집권여당, 朴시장은 功·白장군엔 過 부각
여성계·野 반발 부르고 국민통합기회 날려
文정부·與 최종답안 국민·역사가 지켜볼것
박 전 시장과 백 장군의 죽음엔 얼룩이 묻었다. 박원순의 얼룩은 개인적이다. 죽음의 방식과 여비서 성추행 의혹이다. 그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성추행 고소를 덮었다. 백 장군의 얼룩은 역사적이다. 일제의 간도특설대 복무 이력으로 전쟁 영웅의 고별 행보가 어지러워졌다. 두 사람의 죽음에 대한 정권의 태도가 중요했다.
청와대는 두 죽음에 모두 입을 닫았다. 대신 집권여당이 나섰다. 더불어민주당은 장례에 거당적으로 참여해 박 전 시장의 공(功)을 앞세웠다. 당 홈페이지 전면에 추도 성명을 내걸었고, 거리 곳곳에 '님의 뜻을 기억하겠습니다'는 추모 현수막을 걸었다.
백 장군에겐 침묵으로 과(過)를 부각했다. 신분을 숨긴 당 관계자는 "백 장군이 4성 장군으로서 한국전쟁 때 공을 세운 것은 맞으나 친일 사실도 밝혀진 바 있다"고 했다.
민주당은 박 전 시장의 개인적 얼룩엔 관대했고, 백 장군의 역사적 얼룩엔 엄정했다. 정권이, 집권여당이 정 반대의 선택을 했다는 안타까움을 지울 수 없다.
여당은 박 전 시장의 죽음을 선양함으로써 여성계와 야당의 반발을 불러오는 정치적 분쟁을 일으켰다. 박 전 시장의 극단적 선택 자체는 가슴 아픈 일이다.
하지만 공인의 선택으로 합당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남겨진 성추행 고소인이 논란의 핵심이다. 피고소인 박 전 시장은 죽음으로 책임을 졌지만, 동시에 젊은 여성 고소인을 그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할 처지에 남겨 놓았다. 여당이 그의 죽음을 애통해 할수록 성추행 고소인을 향한 2차 가해는 독해졌다. 집권여당이 '가해'와 '피해'를 역전시킨 셈이 됐다. 50만명 이상이 서울시장장 반대 청원에 동참한 건 비정상에 대한 반감 때문이다.
정권과 집권여당은 백 장군의 죽음엔 침묵함으로써 역사적 화해와 국민적 통합의 기회를 걷어차 버렸다.
백 장군이 이승에 남긴 백년 행적은 두개의 역사적 공간으로 이어진다. 식민지 공간에서 그는 일본의 괴뢰정부인 만주국이 설립한 봉천군관학교를 졸업하고 1943년부터 3년간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했다. 일제의 군인으로 독립운동가들과 맞섰다. 식민지 공간에서 그는 민족에 죄를 지었다. 역사는 그랬던 그를 전혀 다른 공간에서 부렸다. 6·25 전쟁 공간에서 그는 낙동강 전선을 지켜냈다. 그 전선이 무너졌으면 지금 한반도 유일 합법 정부는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일지도 모른다. 이 공간에선 대한민국이 그에게 큰 빚을 졌다.
일제의 장교로 독립을 방해한 죄와 대한민국의 장군으로 나라를 구한 공로가 충돌하는 백 장군의 인생 행로는 우리 사회 진영 대립의 역사적 연원을 보여준다. 역사의 표류자 백선엽을 진보는 일제 장교 백선엽으로, 보수는 대한민국 장군 백선엽으로 분절했다. 대한민국 역사의 맥락을 잇는 정권과 집권여당이라면 백 장군의 죽음은 소중한 기회였다. 분절된 그의 삶을 이어줌으로써 단절된 역사에 갇혀 대립하는 진영을 화해시키고 통합시킬 메시지를 발령할 수 있었다. 대통령이, 집권여당이 '식민시절의 죄과는 역사의 심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나, 대한민국을 지켜 낸 공로는 동작동 국립현충원의 전우와 함께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정도의 언급만 했어도, 국민은 다른 차원의 시대를 예감했을 것이다.
역사는 백선엽과 박원순의 사망을 통해 정권에 질문을 던졌다. 문재인 정부와 집권여당은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듯하다. 최종적으로 어떤 답안을 작성할지 국민과 역사가 지켜볼 것이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