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혼돈 천박 자본주의 질서 재생산
박원순 죽음놓고도 대립 중첩된 갈등 반영
포스트 코로나시대 진영 초월한 연대 절실

20세기 서구 정치에서는 주로 경제 이슈를 중심으로 좌우의 스펙트럼이 형성됐다. 좌파는 더 확실한 평등을 요구하고, 우파는 더 많은 자유를 요구했다. 물론 재분배와 사회보장을 지향하는 좌파와 정부의 크기를 줄여 경제적 간섭을 최소화하고 민간 영역을 늘리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우파의 구분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좌우의 이념적 차별성은 정체성을 중심으로 한 스펙트럼으로 대체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좌파는 경제적 차원을 넘어서 성소수자, 이민자, 여성, 히스패닉, 난민 등 다양한 소외집단을 보호하는 데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우파는 인종, 민족, 종교 등에 연결된 전통적 가치를 중시하는 쪽에 초점을 맞춘다.
한국사회의 이념적 스펙트럼도 복잡하게 분화하고 있다. 동성애, 젠더, 세대 등이 주요한 갈등으로 부각되면서 기존의 전통적 갈등축과 중첩되면서 사회는 지향과 목적을 상실하고 있다. 경제와 안보의 전통적 대립은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 등의 전통적 갈등과도 여전히 중첩되어 있다. 친일과 반공도 쟁점축이다. 그렇다면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이슈는 무엇인가. 사회의 갈등축은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가. 보수와 진보의 경쟁인가. 자유와 평등의 충돌인가.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질서는 계층에 관계없이 무한경쟁과 물질에 포획된 천박한 자본주의 질서를 재생산하고 있다.
다원화된 사회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시민지성을 통해 공론이 형성되어 사회의 가치관으로 정립된다면 소수는 소수대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속한 집단과 위상에 따른 정체성이 사회적 갈등의 증폭을 결과하는 것이 한국사회의 현실이다.
지난 21대 총선이 끝나고 국회는 본격적인 궤도에 진입하지 못하고 7·10대책이라 불리는 고강도의 부동산 대책이 발표됐으나 소기의 정책성과를 거둔다고 낙관할 수 없다. 법무부와 검찰의 대립이 일단락됐다고는 하지만 친여권 인사나 청와대 관련 수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출범과 관련하여 갈등 요인은 상존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대립도 진영논리와 한국사회의 중첩된 갈등을 반영하고 있다. 내년 4·7 보궐선거는 대선 전초전의 성격을 띠게 될 것이고 대선의 보수·진보의 갈등이 1년 앞당겨진 정치현실에서 다시 정치공학이 난무할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의 시대변화에 대한 대책은 내실이 외관을 따라가지 못한다. 진영간, 세대간, 경제 계급간 갈등이 내재화된 데다가 젠더와 정체성 정치가 또 다른 적대의 축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갈등이 내면화하고 일상화된 사회에서 구성원들의 삶의 질이 높아지기 어렵고 지속가능한 발전도 불가능하다.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전방위적 대립, 각 층위 마다 얽혀있는 갈등구조를 어떻게 완화할 것인가가 정치의 핵심 의제가 되어야 한다.
선거민주주의를 가장한 정당의 집단이기주의는 어느 진영이 승리하든 시민들의 삶의 영역에서 제기되는 의제와 이슈들을 해결할 능력을 제시하지 못한다. 한국정치가 고민해야 할 지점은 '일하는 국회법'이라는 허구가 아니라 사회가 안고 있는 고민에 대한 인문학적이고 철학적 성찰이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수준에 이를 기대한다는 것은 연목구어다.
대격변과 무질서는 아니지만 사회적 가치와 합의의 모색의 부재에서 한국사회는 지향을 상실하고 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강국이라는 말이 얼마나 시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사회는 소외되고 배제된 자들을 보호해야 하지만 동시에 숙고와 합의를 통해 공동의 가치를 지향할 수 있어야 한다. 진영과 정체성을 뛰어넘는 연대와 유대가 절실하다.
/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