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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느닷없이 '김지은입니다'가 온라인 서점 알라딘 종합 인기도서 1위, 교보문고 일간 베스트 정치·사회 분야에 1위를 차지했다. 이 책은 안희정 전 충남 지사의 수행비서였던 김지은씨가 성폭력 피해를 세상에 알리고 대법원 최종 유죄 판결을 받아내기까지 장장 544일간의 행적을 기록한 것이다. 그런데 출간한 지 4개월이 지나서야 뒤늦게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누구도 예상 못 한 일이었다.

이유가 있었다. 지난 5~6일 치러진 안 전 지사의 모친상에 문재인 대통령이 조화를 보내고 이낙연 등 유력 정치인들이 조문한 것에 대한 2030 여성들의 분노가 김 씨의 책 구매로 이어진 것이다. 일종의 시위였던 셈이다. 성폭력 가해자에게 살아 있는 '권력'이 거리낌 없이 조화를 보내거나 앞다퉈 상가에 집결하면서 피해자인 김씨가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할지 모른다는 우려에 2030 여성들이 격려 차원에서 '행동'에 돌입한 것이다. 구매자의 대부분이 30대 여성(33.9%)과 20대 여성(24%)이었다. 이들은 트위터 등 SNS에 해시태그 '#김지은입니다'를 달고 책 구매를 인증하는 게시물을 올리며 책 구매를 독려했다.

최근 이런 구매 인증 시위가 또 일어났다. 이번에는 정세랑의 소설 '시선으로부터,'다. 이 책은 공교롭게도 성추행으로 고소당한 박원순 서울시장의 극단적 선택 이후 피해자를 향해 쏟아지는 2차 가해가 소설의 내용과 유사하다는 얘기가 퍼지며 온라인 서점 예스24 종합 순위 34위로 오르는 등 매출이 크게 늘었다. 이번 역시 박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피해 여성과 연대(連帶)하려는 2030 여성들이 이 책으로 구매 인증시위를 펼치는 까닭이다. 이들은 성희롱을 당했던 기억을 공유하고, '#박원순_시장을_고발한_피해자와_연대합니다'라는 해시태그를 한 사람에게 책을 무료로 보내주기도 한다. 도서관에 이 책을 희망도서로 신청하는 경우도 꽤 있다.

소설 속의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가해였다"는 문장은 소셜미디어를 뜨겁게 달구며 2030 여성들을 한데로 묶는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책 구매 인증시위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호의적이다. 이제 '촛불'을 들어야만 저항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책을 구매해 읽으며 응원한다"는 책 구매 인증 시위가 바야흐로 신세대들의 새로운 저항 수단으로 자리를 잡은 느낌이다.

/이영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