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망대해 홀로있는 선박 자체 진화 불가능
구조대 도착하기전 전소·인명피해 우려 커
작년 관내 감식 결과, 전기화재 66% '최다'
수송·조업 몰두하다보니 자체점검은 소홀


오윤용 중부지방해양경찰청장
오윤용 중부지방해양경찰청장
적벽대전에서 조조는 손권과 유비의 동맹군보다 4~5배 많은 병력의 우위를 이용해 적선보다 큰 함선을 대량 건조했다. 배들을 연결하고 널빤지를 깔아 연환지계를 구사했으나, 결과적으로 제갈공명의 지략과 주유의 화공으로 조조를 패퇴시켰다. 적벽대전은 모든 상황에서 유리했던 조조가 '불'을 간과해 대패한 역사적인 사건으로 후세에 큰 교훈을 남겼다.

대부분 사람은 화재사건을 생각하면 육지에서 발생한 사고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바다에서도 연간 수백 건의 화재가 발생한다. 그중 대부분은 선박에서 일어난다.

선박 화재의 유형은 발생 위치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한다. 사람이 선박에 있는 항해 중 발생사고와 배가 부두에 정박했을 때 불이 나는 경우다.

바다는 육지와 다르게 접근성이 매우 떨어진다. 망망대해에 홀로 있는 선박에서 화재가 발생해 자체적인 진화가 불가능하면 구조 세력이 도착하기 전 이미 전소해 인명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크다. 정박해 있는 선박에 화재가 발생하면 연쇄 화재로 이어질 수 있다. 대부분 부두는 협소하므로 많게는 10여 척의 어선이 줄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중부지방해양경찰청은 북으로는 서해 최북단 백령도부터 남으로는 충남 서천군까지 우리나라 면적의 약 37%인 3만6천597㎢의 해역을 담당한다. 그중 서해 중부해역을 오가는 연근해 어선과 다중 이용 선박, 화물선 등에서 다양한 화재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7월에는 한국과 중국을 오가는 한중카페리 기관실에서 불이 나 해양경찰이 승객 모두를 구조한 사건이 있었다. 그해 11월에는 인천의 한 부두에 정박 중이던 어선에서 화재가 발생했는데, 불길이 인근 어선으로 번지는 연쇄화재가 있었다.

지난해 중부해경청 관내에서 발생한 화재사건 감식 결과를 분석해 보니 발전기·변압기·배터리 등에서 발생하는 전기화재가 66%로 가장 많았고, 가스·유류 화재(23%), 기타(11%) 등의 순이었다.

육상에서의 화재사고는 전기장판 등 온열용품을 사용하는 겨울철에 많이 발생하지만, 바다에서는 선박 운항이 많은 봄부터 가을까지 발생 빈도가 높다. 물동량 수송과 조업에 몰두하다 보니 자체 점검 소홀로 인해 화재가 발생하는 일이 많은 것이다. 선박 내부의 고온 배기가스관의 단열, 전기배선의 절연체 손상, 어선의 전기 등불 노후화, 기관실의 각종 파이프 부식 등이 화재의 원인이 된다. 특히 바닷물의 염분은 물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다. 공기 중의 수분을 빨아들여 물방울을 만들고 산소와 결합해 부식을 촉진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선박은 부식에 취약하고, 이는 곧 화재가 발생할 수 있는 요인이 된다.

선박화재는 인명피해와 함께 해양오염사고 등 2차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철저한 사전예방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선박 화재를 막으려면 선박 내 소화기를 주기적으로 배치·점검하고 노후하기 쉬운 각종 시설과 장비를 정비해야 한다. 무리한 항해와 화물 적재를 지양하고 안전한 장소에 배를 정박해야 한다. 또 강한 해풍 속에 흔들리는 배에서도 자신이 지나간 자리를 한 번 되돌아봐야 한다. 이러한 습관을 생활화하면 생명을 빼앗는 큰 '화(火)'를 방지할 수 있다.

불은 인류가 진화하고 발전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왔으나, 반대로 큰 피해를 가져왔다. 멀리는 네로황제 시절 로마 대화재부터 최근 이천 물류창고 화재 참사까지 화재사건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 존재해왔다. 바쁜 바다에서도 평상시 한 번 더 뒤돌아보는 생활습관을 통해 물(水) 위에서 벌어지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오윤용 중부지방해양경찰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