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불안에 냉소·분노 증폭 내면화
분석·지향 대신 일방적 대립·갈등
지성적 성찰 정파적 이익 몰아붙여
지난 '100년의 고통' 되풀이할텐가
하나의 사건이 있으면 그 사건의 작동 과정과 이유가 있으며, 그것을 초래한 원인이 있을 것이다. 불안한 사건과 그렇게 해서 부서지는 사회 및 일상을 원하지 않는다면 사고는 밝혀 대응하고, 그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그 진행 과정과 원인을 찾아 고쳐가야 한다. 또한 그 일로 인해 우리 삶과 공동체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그 의미는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은 당연한 과정이다. 모든 사람이 한 사건의 심층적 원인과 의미를 밝히는 일에 매진할 수 없기에 먼저 언론이 나서 그 과정과 원인을 밝히고 보도한다. 그 뒤에 담긴 본질적 원인을 논의하고, 그 사건의 의미와 그 이후의 일을 예견하고 대비하기 위해 성찰적 지성을 수행하는 일 역시 반드시 필요하다. 한 사회나 국가는 물론 개인조차도 이러한 과정 없이는 자멸할 수밖에 없다.
미흡한 대응은 퇴행하며 심지어 파멸하기도 할 테지만, 깊이 있는 대응은 위기를 기회로 만든다. 하나의 담론은 이 모든 과정을 성찰한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성찰적 담론이 필요하며, 그 수준에 따라 개인과 사회의 미래가 결정될 수밖에 없다. 그 성찰은 심지어 현재와 과거의 삶까지도 달리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여 새롭게 언어화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있어야할 당연한 분석과 지향은 사라지고 오직 대립되는 진영의 갈등과 주장만이 일방적이고 맹목적으로 난무한다. 코로나 감염증이 경고하는 사태는 무엇일까. 그 경고를 다만 마스크와 K-방역으로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공장식 축산과 서식지 파괴로 비롯된 생태적 혼란이 원인임에도 오히려 개발과 성장의 허상을 되풀이 한다. 비정규직과 플랫폼 노동의 희생을 딛고 유지되는 경제와 사회가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본 권력 중심의 논의만 일삼고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추동되는 문명사적 전환을 다만 디지털 중심의 경제 논의로 대응하려 한다. 산업화 이후를 말하면서도 사고는 여전히 산업화 시대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다. 개인과 소외된 이들의 권리, 시민의 보편적 권리를 논의해야할 언론과 법이 권력 논의에 빠져 있다. 언론은 성찰 대신 자사 이익에 따른 선동을 일삼고 있다. 교육 환경과 미래가 급격히 변화할 것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에는 기껏 등록금 반환과 온라인 수업 논의 등의 곁가지만 난무한다. 대학체제 자체가 변화하기에 근본적인 교육혁명이 필요함에도 정책권자는 그들의 기득권만 옹호하려 한다. 맹목적 선언에 휘둘려 지성적 성찰을 정파적 이익으로 몰아붙인다.
그 가운데 냉소는 커지고 지성은 진지충이 되며, 성찰적 담론은 사라지고 즉물적 대응이 미래의 지향을 대신한다. 정말 우리는 반짝 빛나는 안정의 시간을 보내고, 겨우 손에 쥔 한 줌의 풍요에 심취해 지난 100년의 고통을 되풀이할 텐가. 지성적 성찰과 예언적 지향이 사라지면 어두운 심연이 우리를 나락으로 이끌 것이다.
/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