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성추행의혹 극단적 진영 논쟁
감염불안에 냉소·분노 증폭 내면화
분석·지향 대신 일방적 대립·갈등
지성적 성찰 정파적 이익 몰아붙여
지난 '100년의 고통' 되풀이할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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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채널A 기자가 현직 검사장과 함께 정권의 향방에 관여하는 모의를 했다고 한다. 그 사건의 수혜자일 수 있는 검찰총장이 사건 수사를 편파적으로 방해한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집값 때문에 시민들의 삶이 불안해지고,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각종 세제를 대폭 개편하면서 집값 안정을 시도하지만 시장에서의 패배가 예견되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 대해 누구도 만족해하는 것 같지 않다. 마침내 당과 정부가 하나가 되어 그린벨트를 해제해서라도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고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불안과 궁핍을 해소하기 위해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하니 다른 취업준비생들이 심각하게 항의한다. 10여년에 이르도록 이 나라 수도의 행정을 도맡아 수많은 업적을 남겼던 인권 변호사 출신의 시장이 성추행 의혹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졌지만,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극단적으로 갈라진 두 진영이 수긍할 수 없는 논쟁을 이어가고 있다. 사건과 사건이 연이어 일어나면서 점차 사람들은 냉소적으로 변해간다. 그 가운데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불안이 일상이 되면서 사람들의 냉소와 분노가 증폭되고 내면화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하나의 사건이 있으면 그 사건의 작동 과정과 이유가 있으며, 그것을 초래한 원인이 있을 것이다. 불안한 사건과 그렇게 해서 부서지는 사회 및 일상을 원하지 않는다면 사고는 밝혀 대응하고, 그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그 진행 과정과 원인을 찾아 고쳐가야 한다. 또한 그 일로 인해 우리 삶과 공동체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그 의미는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은 당연한 과정이다. 모든 사람이 한 사건의 심층적 원인과 의미를 밝히는 일에 매진할 수 없기에 먼저 언론이 나서 그 과정과 원인을 밝히고 보도한다. 그 뒤에 담긴 본질적 원인을 논의하고, 그 사건의 의미와 그 이후의 일을 예견하고 대비하기 위해 성찰적 지성을 수행하는 일 역시 반드시 필요하다. 한 사회나 국가는 물론 개인조차도 이러한 과정 없이는 자멸할 수밖에 없다.

미흡한 대응은 퇴행하며 심지어 파멸하기도 할 테지만, 깊이 있는 대응은 위기를 기회로 만든다. 하나의 담론은 이 모든 과정을 성찰한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성찰적 담론이 필요하며, 그 수준에 따라 개인과 사회의 미래가 결정될 수밖에 없다. 그 성찰은 심지어 현재와 과거의 삶까지도 달리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여 새롭게 언어화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있어야할 당연한 분석과 지향은 사라지고 오직 대립되는 진영의 갈등과 주장만이 일방적이고 맹목적으로 난무한다. 코로나 감염증이 경고하는 사태는 무엇일까. 그 경고를 다만 마스크와 K-방역으로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공장식 축산과 서식지 파괴로 비롯된 생태적 혼란이 원인임에도 오히려 개발과 성장의 허상을 되풀이 한다. 비정규직과 플랫폼 노동의 희생을 딛고 유지되는 경제와 사회가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본 권력 중심의 논의만 일삼고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추동되는 문명사적 전환을 다만 디지털 중심의 경제 논의로 대응하려 한다. 산업화 이후를 말하면서도 사고는 여전히 산업화 시대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다. 개인과 소외된 이들의 권리, 시민의 보편적 권리를 논의해야할 언론과 법이 권력 논의에 빠져 있다. 언론은 성찰 대신 자사 이익에 따른 선동을 일삼고 있다. 교육 환경과 미래가 급격히 변화할 것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에는 기껏 등록금 반환과 온라인 수업 논의 등의 곁가지만 난무한다. 대학체제 자체가 변화하기에 근본적인 교육혁명이 필요함에도 정책권자는 그들의 기득권만 옹호하려 한다. 맹목적 선언에 휘둘려 지성적 성찰을 정파적 이익으로 몰아붙인다.

그 가운데 냉소는 커지고 지성은 진지충이 되며, 성찰적 담론은 사라지고 즉물적 대응이 미래의 지향을 대신한다. 정말 우리는 반짝 빛나는 안정의 시간을 보내고, 겨우 손에 쥔 한 줌의 풍요에 심취해 지난 100년의 고통을 되풀이할 텐가. 지성적 성찰과 예언적 지향이 사라지면 어두운 심연이 우리를 나락으로 이끌 것이다.

/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