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2101000960000046631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면 많이 온 것인지도 모른다. 대부분 임기 반환점을 도는 3년 차 초입에 꺾였다. 레임덕 말이다. 김대중 정부는 정현준, 이용호, 진승현 게이트가 터졌다. 노무현 정부는 행담도 개발의혹, 부동산값 폭등으로 곤욕을 치렀다. 이명박 정부는 대통령의 형이 포함된 '영포라인'과 민간인 사찰이, 박근혜 정부는 성완종 리스트와 비선 실세 파동으로 결정타를 맞았다. 모두 3년 차에 일어난 일들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4월 개헌 발의 국회연설문에 "임기 3년이 지나면 당정관계 레임덕이 옵니다."라는 문구를 직접 써넣었다. 심지어 '임기 3년 차의 저주'라는 표현도 썼다. 인기 하락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던 노 대통령의 고뇌가 절절하게 묻어난다. 레임덕이 오면 인사는 실패하고 정책은 꼬이며 여권은 분열하기 시작한다. 불안한 대통령의 표정을 읽은 각료들에게 대통령의 말발이 먹히지 않는다. 모든 것이 내리막길이다. 레임덕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노 대통령에 비하면 문재인 대통령은 그래도 행복한 편이다. 3년 차가 지났는데도 지난 4월 총선 후 지지율은 70%를 넘어섰다. 지지율만큼 문 대통령의 파워도 꺾일줄 몰랐다. 문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민주당은 '여의도 출장소'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그런데 이번 그린벨트 해제를 두고 미묘한 징후가 감지된다. 17일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의 "(그린벨트 문제와 관련해) 당정이 입장을 정리했다"는 발표에도 추미애 법무부 장관, 정세균 국무총리, 이재명 경기지사, 이낙연 전 총리, 김부겸 전 의원은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내놓았다. 당정이 입장 정리를 했다면 사실상 문 대통령의 재가가 난 셈이다. 그런데 20일 문 대통령이 "미래세대를 위해 그린벨트를 보존한다"고 발표했다. 문 대통령이 한 발 뒤로 물러선 것이다. 3개월 전이었다면 생각도 못 할 광경이다.

레임덕은 대통령이 정책의 일관성 없이 뒤뚱거리는 오리처럼 흔들린다는 의미다. 국정 장악력이 떨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부동산 대책에 문 대통령의 말이 먹히지 않는다. 힘의 추가 이낙연 이재명 김부겸 등 차기 권력주자들에게 살짝 넘어간 느낌이다. 이제 여권의 차기 주자들은 문 대통령과 본격적인 '거리 두기'에 나설 것이다. 공교롭게 대통령의 지지율도 하락세다. 사실상 권력투쟁이지만, 레임덕이 오면 피해를 보는 건 결국 국민이다.


/이영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