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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돗물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으로 꼽힌다. BC 312년 로마의 재무관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가 설계한 '아피아 수로' 이후, 인류의 평균 수명은 30년이 연장됐다. 그는 주변의 샘물과 호수의 물을 관을 통해 끌어와 공동 목욕탕과 분수대에 공급했다. 로마시민이 얼마나 흡족해 했을지 눈에 선하다. 수도가 없었다면 고대 로마제국의 영광도 없었을 것이다. 로마 황제들은 도로만큼이나 상수도 설치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로마시대 수도관의 총 길이는 578㎞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때문에 150만명이 살고 있던 로마에 물이 넘쳤다.

가정에서 수도가 사용된 건 1613년 영국 런던에 민간기업 '뉴리버 수도회사'에 의해서다. 비록 일부 지역이었지만 수도관을 깔고 템스 강의 물을 끌어다 급수를 시작했다. 위생상태는 그리 신통치 않아서 1848년 콜레라가 두 차례 발생, 2만5천명이 목숨을 잃으며 '수돗물 포비아(공포증)'가 확산했다. 이때 존 스노가 전염병의 주요 원인이 수인성 병원균이란 걸 밝히면서 전 세계 도시에는 상하수도 시스템 설치가 본격화됐다. 최초 고도정수처리공정은 1907년 프랑스에서 처음 시작됐다.

국내 최초의 정수장은 1908년 서울 성동구 왕십리에 세워진 뚝섬 정수장이다. 미국인 콜브란과 보스트윅이 고종으로부터 상수도 사업권을 따내 건설했다. 인천에 상수도가 보급된 건 1910년 12월 1일이었다. 노량진에서 넘어온 물은 송현배수지로 합류됐고 이곳에서 인천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1883년 개항 전만 해도 전동, 용동, 화수동, 송림동 등엔 큰 우물이 있어 지역 주민들의 식수 확보에 어려움은 없었지만, 개항 후 인구가 증가하고 신포동 일대에 일본, 중국, 영국 조계지가 조성되며 상수도의 필요성이 높아졌다.

인천 서구 한 빌라 수돗물에서 깔따구 유충이 발견된 이후 파문이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다. 서구는 지난해 붉은 수돗물 파동으로 곤욕을 치른 곳이라 인천 시민이 받은 충격은 컸다. 물만 보면 공포를 호소한다. 1년 만에 수돗물 파동이 재발할 거라고는 인천시도 상상을 못 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인천시의 대응은 한심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치수는 지도자의 최고 덕목으로 꼽힌다. 물을 다스리지 못하는 지도자는 자격이 없다. 물을 지키는 일이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번 인천시 조치는 실망 그 자체다.

/이영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