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아파트 건설현장을 지나다 보면 확성기를 크게 튼 노동조합 집회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건설노동자들의 권익 보호 차원에서 노조의 목소리를 주장하기 위한 집회라고는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헌법이 보장한 노동권과 집회·시위의 자유를 악용해 특정 노조에 소속된 조합원을 채용하라고 건설사 등에 압박하는 경우다.

일부 노조의 불법행위는 건설현장 채용시장을 왜곡시켜 노동자와 건설업계에 끼치는 부작용이 크다. 그러나 상당수 중소 건설사들은 신고하길 꺼린다. 다른 건설현장에서 집단적 행위로 보복당할까 두려워서다.

검찰이 인천·경기지역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불법적인 공갈·협박을 일삼은 노조 임원들을 무더기로 적발해 재판에 넘겼다. 이 사건 공소사실을 살펴보면, "노조가 아니라 깡패"라고 토로하는 건설현장 관계자들의 심정을 들여다 볼 수 있다.

24일 검찰에 따르면, 최근 인천지검 공공형사부(이희동 부장검사)는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상 공동공갈 등 혐의로 모 노조 위원장 A(43)씨 등 2명을 구속기소하고, 같은 노조 소속 수도권 지부장 B(65)씨 등 4명을 불구속기소 했다. A씨 등 노조 간부 6명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4월까지 인천 송도와 주안, 경기도 광명 등 건설현장 5곳에서 46차례에 걸쳐 건설사 관계자 14명을 협박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A씨 등 모 노조 간부들은 같은 기간 아파트 건설현장 5곳은 물론 해당 업체 본사와 공사를 발주한 원청회사 등에서 42차례에 걸쳐 집회를 열었다. 건설현장 현장소장 등을 상대로 4차례 고발하고, 관공서에 3차례 민원을 제기하면서 건설업체를 압박했다. 그 대가로 해당 노조는 건설현장 5곳에서 소속 노조원 66명을 채용하게 했다. 또 건설사 등에게 단체협약비 명목으로 9천여만원을 뜯어내기도 했다.

A씨 등 노조 간부들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초까지 인천 송도국제도시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과 같은 건설사의 경기도 광명 현장에서 잇따라 집회를 열었다. 많을 때는 조합원 350명이 동원됐고, 신분증 검사 등을 빌미로 현장 출입문을 봉쇄하기도 했다. 이 노조는 관할 경찰서에 '안전한 현장 만들기'를 명목으로 집회 신고를 했지만, 실제로는 노조원 채용을 요구하기 위한 압박용 집회였다.

인천 송도뿐이 아니었다. 위례신도시, 안양 독산역, 인천 미추홀구 주안, 화성 동탄신도시 등 수도권 대형 아파트 건설현장 곳곳에서 A씨 등의 노조는 건설사를 압박했다. 인천 주안 건설현장에서는 현장소장 등에게 "인근 건물에 올라가 꼼짝 못하게 할 사진을 찍어뒀다"며 "우리 노조원을 채용해주지 않으면 노동청에 고발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노조의 한 간부는 동탄신도시 현장에서는 "노조원을 채용하지 않으면 현장을 때리겠다"며 "내가 죽든지 건설업체가 죽든지 결론을 내겠다"고 위협했다.

A씨 등이 주도한 노조는 2018년 6월 설립돼 조합원이 약 1천800명 규모다. A씨 등 핵심 간부들은 중국 동포 출신 귀화자가 많고, 조합원 상당수가 외국인 노동자다. 노조는 건설현장에 채용시킨 조합원들로부터 첫 달 급여 중 1일분인 25만원을 투쟁기금으로 받아 집회 개최 등에 활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 관계자는 "건설노조가 노조원 채용을 요구하면서 집단적·조직적으로 현장 관계자들을 협박하면, 공사의 원만한 진행을 위해 피해자들을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며 "이로 인해 해당 노조에 가입되지 않은 근로자들의 채용 기회가 줄어들어 건설시장이 왜곡되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검찰 관계자는 "중소 건설회사 관계자들은 수사 과정에서 노조의 불법행위로 피해를 당하고도 신고조차 할 수 없다며 집단적 행위에 의한 보복의 두려움을 호소했다"며 "노조의 집단적인 위력 행사를 통한 불법행위를 엄단해 중소 건설회사를 보호하고, 공정하고 자유로운 고용질서를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