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실업 출구 안보인다' 2001년 신문 제목
강산이 2번, 정권이 5번이나 바뀌었는데도
기업경기동향조사·고용 상황 여전히 최악
산업 정책 재탕·3탕에 나쁜일자리 양산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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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청년실업 출구가 안 보인다.'

2001년 11월5일자 모 주요일간지의 청년실업 특집기사 제목이다. 20~29세 청년취업자수가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의 477만명에서 2001년의 412만명으로, 불과 4년 만에 65만명이 감소한 것이다. 20, 30대도 감원시킨다며 충격이라는 반응이다.

강산이 두 번 변한 지금은 어떨까?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달 28일 매출액 600대 기업 대상의 기업경기실사지수(Business Survey Index) 조사에서 올해 2분기(4~6월) 고용실적 BSI는 평균 80.6으로 전년도 2분기(97.6) 대비 무려 17.0p나 감소했다. 기업경기동향조사를 시작한 1980년 이래로 역대 최저이다. 실업자 수는 2000년 이후 3월 기준으로는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고용상황도 최악이다.

코로나19 쇼크가 가세한 탓이나 결정적인 것은 중진국 함정이다. 개발도상국이 경제발전 초기에는 순조롭게 성장하다 중진국 수준에 도달하면 성장률이 장기간 정체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세계은행이 2006년 '아시아경제발전보고서'에서 처음 제기했다. 정부주도의 압축성장에 따른 고비용, 저효율문제를 시장메커니즘을 통한 해소에 주저하다간 어김없이 장기 저성장의 늪에 빠지는 것이다. '중진국 함정'에 빠져 경제가 퇴보하는 국가들이 대부분이다.

한국에서는 1980년대 후반 이후 경제성장률이 눈에 띄게 둔화되었지만 민주화열풍에 도취된 절대다수 경제주체들이 시장경제 전환이란 수술을 거부하다가 1998년에 국제금융자본의 융단폭격을 맞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영리주의에 근거한 '시장의 법칙'을 거부하고 성공한 사례는 단 한건도 없다. 오늘날 EU(유럽연합)의 경쟁력 둔화는 시장경제와의 힘겨루기에서 판정패를 의미하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도 미국에서 시장의 힘을 맹신하는 WASP(앵글로색슨계 백인 크리스천)의 승리인 것이다.

한국의 경우 시장법칙을 거부하다 혹독한 대가를 치른 후부터 고용문제가 사회적 현안으로 급부상했다. 유권자들은 국내 민주주의 역사상 최초로 '경제대통령' 운운하는 대선 후보에 표를 몰아주었다. 공자의 적자(嫡子)인 중국인들도 부러워했던 소중화(小中華)의 나라에서 이변을 연출한 것이다. 김대중 정부는 위기 극복 방안으로 벤처기업을 적극 육성하는 정책을 펼쳤다. 과감한 규제 개혁과 조세 지원이 이어졌다. 스톡옵션 제도가 처음 등장했고, 기술거래소가 열려 벤처기업의 숨통을 틔워줬다. 게임업체도 병역특례 대상 기업에 포함됐다. 벤처투자자금을 쉽게 회수하도록 코스닥 시장 활성화도 뒤따랐다. 벤처 생태계가 모습을 갖추며 네이버, 카카오, 엔씨소프트 등이 다크호스로 등장했다. 한국이 IT강국으로 부상하는 계기였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은 산업경쟁력을 키우는 것인데 형평을 강조했던 노무현 정부는 글로벌리제이션과 몇 합을 겨루다 국가경쟁력만 떨어뜨렸으며 이명박정부는 '녹색성장' 어젠다로 혈세를 퍼부어댔지만 온실가스는 더 증가했다. 그 와중에서 정부는 효과가 더딘 산업정책 대신 임시직과 알바 등 나쁜 일자리만 양산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양질의 일자리를 늘린다며 공공부문 채용을 점차 확대했다.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 간판을 내걸었지만 무슨 사업을 추진했는지 별로 기억에 없다.

문재인 정부의 산업정책은 이전 정부의 재탕, 3탕이다. 벤처정책은 2000년 당시와 가장 닮았으며 신재생에너지정책은 이명박 정부 녹색성장의 '시즌2'인 것이다.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6일 발표한 '그린 뉴딜'대책에서 2025년까지 총 73조원을 투입해서 재생에너지 발전용량을 지난해 12.7 기가와트(GW)에서 42.7GW로 늘리고 전기차 113만대, 수소차 20만대를 생산해서 일자리 66만개를 창출하겠다고 호언했다. 그러나 친환경차 대비 고용흡수력이 월등한 내연기관 자동차산업의 연착륙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지속가능성은 더욱 의문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전 정부가 갈아놓은 밭을 갈아엎고 새 작물을 심는다고 법석이니 나라곳간만 거덜 낸채 앵무새처럼 일자리 타령만 되풀이하는 것이다.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