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제 국회 법사위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발언으로 발칵 뒤집어졌다. 미래통합당 윤한홍 의원이 고기영 법무부 차관에게 "올해 1월 서울동부지검장으로 와서 4월에 법무부 차관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 추 장관 아들 수사와 관련 있는 것 아니냐"고 질문하자, 추 장관이 "소설을 쓰시네"라며 끼어들어서다. 아들의 휴가 미복귀 의혹을 상기시키는 질문에 불쾌해진 추 장관이 질문 자체를 '소설'로 폄하하고 조롱하며 맞받아친 것이다.
'소설 쓰고 앉아 있네(혹은 자빠졌네)'라는 표현은 일상에서 흔하게 접하는 관용적 표현이다. 아무 생각 없이 허무맹랑한 소리를 지어낸다는 비난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목숨 걸고 소설을 쓰는 작가들 입장에선 그야말로 허무맹랑한 표현이다. 황석영에게 소설은 최소한 "엉덩이로 쓰는" 중노동이다. 김연수는 권위있는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뒤 가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죽을 고비를 넘길 만큼 고통스러운 소설 쓰기를 계속하라고 등을 떼민다"며 "큰일 났다"고 했다.
소설이 허구라 해서 소설 쓰기를 거짓말하기 쯤으로 폄하하는 관용적 태도도 소설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소설의 이야기는 허구이지만 등장인물, 사건, 배경의 개연성으로 현실적인 보편성을 갖는다. 소설은 허구이되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진실로 독자를 안내한다. 문학의 효용이다. 자신의 영혼과 육체를 팔아 한 편의 소설을 창작하는 작가들에게 '소설 쓰고 앉아 있네'라는 표현은 모욕적이다.
추 장관은 법리에 따라 사실을 밝히는 국가 법무를 총괄하는 장관이다. 윤 의원의 질문이 불쾌해도 소설이냐 아니냐는 시비를 일으킬 일이 아니다. 검찰 수사 중인 아들의 의혹이 법리에 따라 사실대로 밝혀질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면 그만이다.
그런데 정작 법무부와 검찰을 중심으로 소설 논란의 대상이 된 사건들로, 추 장관의 "소설 쓰시네" 발언은 계속 회자될 듯싶다. 지금 시중에선 채널A 전 기자와 한동훈 검사장의 '검언유착'사건과, KBS의 오보파동으로 초래된 '권언유착'의혹 중에 '무엇이 소설이냐'를 놓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검언유착은 녹취록 공개로 개연성이 흐려졌고, 권언유착은 KBS의 사과로 반대가 됐다. 두 사건과 의혹 중 어느 것이 소설로 판명되느냐에 따라 정국은 요동칠 것이다. 독자인 국민의 관심이 집중돼 결말을 미루기도 어렵다.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정치를 경험하는 시절이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