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부터 사망 9명·부상 243명
출장땐 추락 방지조치 적용 한계
고용부, 예방기준조차 마련 못해
"이렇게까지 위험한 일인 줄 식구들은 모르죠. 그래도 가족을 위해 합니다."
인천·부천지역을 중심으로 에어컨 설치·수리기사로 활동하고 있는 경력 28년차의 이모(51)씨는 "작업 중에 추락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심심치 않게 접하는데, 그럴 때마다 무섭다"면서도 가족을 떠올렸다.
요즘은 휴가철이라 조금은 덜하지만, 지난달까지만 해도 하루에 14~15건 정도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 건을 처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보통 3~4시간.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작업 현장은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지어진 지 오래된 아파트 난간에 매달린 실외기를 수리할 때면 더욱 그렇다. 이씨는 "무거운 실외기를 아파트 난간에서 분리하고 수리한 뒤 다시 달아야 하는데 보통 일이 아니다"라며 "높은 곳에서 난간에 매달려 작업해야 하는 경우가 많고, 용접도 해야 해 늘 위험하다"고 했다.
15층 정도 높이의 아파트에 사는 소비자가 에어컨 실외기 수리를 대기업에 맡기면 비용은 60만~70만원 정도라고 한다. 사다리차를 이용해 아파트 난간에 있는 실외기를 떼어낸 뒤 지상에서 수리하고 다시 사다리차를 이용해 설치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관련 비용이 더 들어간다. 안전을 위한 조치다.
적지 않은 비용에 이씨와 같은 사설 수리기사를 찾는 소비자가 생기게 마련이다. 이씨는 "결국 대기업쪽에서 하지 않는 일을 우리 같은 사설 수리기사들이 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대기업보다 적은 비용 받고 수리를 하면서도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 셈이다.
이씨는 "추락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끈 등 안전장비는 꼭 착용하려고 하지만, 공간적인 문제로 움직임을 제약받는 경우엔 챙기지 못할 때도 있다"며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작업은 온전히 '혼자'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산업안전보건법 등 관련 규정상 사업주가 건설현장 등에서 근무하는 근로자의 추락사고가 예상될 경우 안전그물 등 추락 방지조치를 하도록 돼 있지만, 에어컨 수리처럼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작업을 하는 경우 적용에 한계가 있다.
고용노동부는 에어컨을 설치하거나 수리하면서 발생하는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가이드라인 마련 등을 위해 최근 업계 관계자들과의 간담회를 갖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예방기준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 당국이 에어컨 설치·수리기사 안전문제에 뒤늦게 관심을 가진 사이, 에어컨 설치·수리기사가 숨지거나 다치는 사고는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에어컨 설치·수리작업 중 숨진 기사는 지난 2016년부터 올 6월까지 9명에 달한다. 올 들어서만 2명이 경기 광명시와 광주광역시에서 작업 중 숨졌다. 이 기간 작업 중 떨어지거나 넘어져 다친 사람은 243명이다. 인천에선 지난해 5월 부평구 청천동의 한 아파트 4층에서 작업 중이던 에어컨 설치기사 2명이 추락했다.
/이현준기자 uplh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