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하고 치니 '억'하고 쓰러졌다. 경찰이 변명이라고 내놓은 이 한 줄의 문장에는 독재의 교만이, 사건을 은폐하려는 권력의 교활함이, 한 청년의 죽음이 묻어난다. 1987년 1월 14일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 509호 조사실에서 청년 박종철은 극심한 공포 속에서 고문을 받다가 사망했다. 처음에 정부와 경찰은 은폐를 시도했다. 하지만 처음 사체를 본 의사, 사체 보존명령을 내린 검사, 국과수 부검의, 그리고 기자의 노력으로 사건 전모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나마 정의가 살아 있어 가능했다.
만일 그때 모두 박종철의 죽음을 외면했다면, 사건의 진상 파악은 물론이고 민주화도 매우 더디게 찾아왔을 것이다. 경찰은 처음엔 관련자가 2명이라고 사건을 축소했었다. 하지만 언론이 5명이 가담한 것을 밝혀내면서 국민의 분노가 폭발했다. 독재의 두려움으로 떨던 국민들이 마침내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을 터트린 것이다. 그리고 6월 29일 대통령 직접선거와 국민의 기본권 보장, 구금된 민주화 인사들의 석방을 내용으로 하는 6·29 선언이 발표됐다. 감옥에 갔던 양심수들이 사회에 속속 복귀했다. 이들 중 상당수가 현재 권력의 요직을 독차지하고 있다.
요즘 그들이 주류를 이루는 우리 국회를 보면 과연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국가인가 라는 의구심이 든다. 절차와 토론이 철저히 무시된다. 감사원장을 공격하는 집권당 의원들을 보면 무섭기까지 하다. 군사독재 정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불리한 일이면 침묵으로 일관하는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등 여권 인사들이 연루된 사건들에 대한 검찰 수사는 4 ·15 총선 석 달이 지났는데도 감감무소식이다. 윤미향 사태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수사할 기미조차 없다. 언론도 이를 지적하지 않는다.
글쓰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는 글로 독자들을 설득하기가 점점 어렵다는 뜻도 된다. 그러니 글 쓰는 이들이 괴로울 수밖에 없다. 이유야 많겠지만, 민주주의가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도 한 원인이다. 만일 지금 '박종철 사건'과 유사한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 양심 있는 의사, 소신 있는 검사, 열정을 가진 기자가 과연 있을까. 이럴 때일수록 정의가 살아 있어야 한다. 언로(言路)가 열려야 한다. "진중권이 언론보다 낫다"는 말이 나온다면 이 역시 슬픈 일이다.
/이영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