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맛·감칠맛 구수하고 아릿한 냄새
백석의 '국수'에서도 기층문화 자리
驛마다 후루룩 가락국수 눈에 선해
그 순간 복원… 이래저래 먹고싶다
문학작품 속에 미각 충동과 경험이 서린 장면이 나오면 사람들은 으레 자신이 어린 시절에 겪었던 그 맛의 경험을 순간적으로 떠올릴 수밖에 없다. 백석의 시 가운데는 맛이나 먹을거리를 핵심 이미지로 삼아 노래한 작품이 제법 많다. 그 가운데 '국수'라는 유명한 작품이 있다.
백석이 만주 살 때 쓴 이 작품은 1941년 4월 '문장' 폐간호에 실렸다. 백석은 같은 지면에 '흰 바람벽이 있어'를 통해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라는 절창을 쏟아놓았고, '국수'를 통해서는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시간과 공간을 풍요로운 감각으로 재현함으로써 가장 인간다운 삶이 어떤 것인가를 물었다. 그 힘은 우리가 오랫동안 만들고 먹고 누려온 기층문화야말로 저 천하고 폭력적인 군국주의의 폭력에도 불구하고 이어져가야 한다는 믿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국수가 '냉면'이라는 점에 주목해보자. 밀가루가 아니라 메밀가루로 만든 '국수'는 평안도에서 집집마다 갖춘 국수틀로 빚었던 것인데, 거기에 "겨울밤 쩡 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넣고 "얼얼한 댕추가루(고춧가루)"와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넣어 먹는 서북지역 특유의 국수는, 연전에 남북정상회담 때 화제가 되었던 '평양냉면'의 원조인 셈이다.
나는 이 평양냉면을 좋아한다. 여름이 되면 여기저기서 등장하는 '물냉', '비냉', '회냉'을 다 좋아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평양냉면의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맛이 제일이다. 굳이 말하자면 담백한 맛인데, 백석은 그것을 '고담'과 '소박'이라고 표현했다. 예전에는 꿩고기가 얹히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그냥 쇠고기를 쓴다. 배도 넣고 동치미 무도 썰어 넣는다. 거기에 달걀 반쪽과 김치를 함께 먹으면 우리가 즐기는 '평양냉면'이 된다. '동국세시기'에도 냉면은 서북지역 것이 최고라고 적혀 있다는데 해방 전후에 월남한 분들에 의해 이 음식은 남쪽에 정착하게 된다.
냉면 말고도 여름에 먹는 또 하나의 별미는 단연 콩국수다.
한여름 무더위를 날리는 데 콩국수만 한 서민 식품이 없다. 시원한 콩국에 오이를 썰어 넣고 얼음을 띄우면 냉면과 자웅을 겨루는 여름철 대표 음식이 된다. 그러고 보니 국수의 파생어가 정말 많다. '칼국수'나 '콩국수'에다가 '밀국수', '메밀국수', '쌀국수', '잔치국수', '냉국수', '비빔국수' 등이 떠오른다. 우리가 즐기는 '라면'은 '납면(拉麵)'에서 유래했는데 북한에서는 그 형태 때문에 '꼬부랑 국수'라 부른다고 한다.
지금도 기억에 선한 것 하나만 더 이야기해보자. 기차를 타고 가다 잠시 내려 후루룩 먹고는(거의 마시는 수준!) 다시 기차를 타고 먼 거리를 가야 했던 '가락국수'를 아시는지? 특히 대전역 가락국수는 매우 유명했는데 역 승강장 간이식당에서 팔았다. 경부선과 호남선의 분기점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경부선과 장항선의 분기점인 천안역, 중앙선과 태백선과 충북선이 분기하던 제천역, 경부선과 대구선의 분기점인 대구역에서도 가락국수는 다른 것과는 바꿀 수 없는 베스트 음식이었다.
여기서 '후루룩'이라는 의성어를 떠올려보자. 그 안에는 여러 의미가 들어 있을 것이다. 맛이 워낙 좋아 빨리 먹는다는 속도감도 있겠지만, 너무 양이 적어 빨리 먹을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 가난이 서려 있기도 하다.
이처럼 맛의 경험과 몸의 기억은 선명하게 한 시절을 붙잡고 있고, 또 우리는 그 맛을 통과하면서 비로소 그때의 순간과 장면을 온전하게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래저래 '국수'가 먹고 싶은 날이다. 그 안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담과 소박의 맛을 담은 '평양냉면'이든, 여름철 별미인 '콩국수'든, 베트남 브랜드를 달고 있는 '쌀국수'든, 아니면 그 옛날의 '가락국수'든.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