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소송법 제정 67년만에 첫 도입
4% 그친 보석률, 조건부 완화 기대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된 A(50)씨는 지병이 있는 80대 노모를 둔 채 인천구치소에 수용돼 인천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있었다.
A씨가 구속되자 어머니는 스스로 생계를 꾸릴 수 없었고 건강도 나빠졌다. 어머니를 돌보고 싶었지만, 미결수의 보석은 바늘구멍 같아서 통과하기 쉽지 않았다.
곤란한 상황에 처했던 A씨는 형사소송법 제정 이후 67년 만에 새로 도입된 '전자 보석 제도'로 자택에서 어머니를 돌보면서 재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위치 추적 기능을 탑재한 손목시계형 전자장치를 차고, 인천지법으로부터 '야간 외출 제한'을 조건으로 보석을 허가받아 일을 하고 어머니를 간병하며 현재 재판받고 있다.
법무부는 이달 5일부터 구속 기소된 피고인을 대상으로 A씨 같은 내용의 '전자장치부착 조건부 보석제도'를 시행한다고 3일 밝혔다.
이 제도는 구속된 피고인이 석방돼 손목시계형 전자장치를 부착한 채 주거지에 머물면, 지역 준법지원센터(보호관찰소)가 주거 제한, 외출 제한, 피해자 접근금지 등을 감독하는 보석방식이다. 보석금 지급 등 나머지 절차는 기존과 같다.
피고인이 자택 등 주거지에 머물면서 사실상 구속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게 법무부 설명이다.
법무부는 지난해 9월부터 전국 33명을 대상으로 전자 보석을 시범 운영했는데, 인천지법에서 재판받는 피고인이 8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인천에서 집중적으로 시범 운영돼 효과를 인정받은 셈이다.
2살 자녀가 있는 B(19·여)씨는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돼 기소됐다. 인천에서는 아이를 돌볼 가족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B씨도 전자장치를 차고 법원의 '외출 제한 명령'을 지키면서 육아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재판을 받다가 항소심에서 징역형이 확정돼 전자 보석이 종료됐다.
현재 전자 보석 제도를 운영 중인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은 보석 비율이 30~40% 수준이다. 반면 한국은 보석률이 약 4% 수준에 그치고 있다. 기존 '허가'와 '불허가'로만 나뉘었던 보석제도에 전자장치 부착 조건부가 포함되면서 일부 완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법원 입장에서는 도주 우려를 막을 수 있고, 피고인은 불구속 상태에서 자기방어 기회를 실질적으로 살릴 수 있고, 구치소 입장에서는 과밀화를 해소할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법무부는 설명했다.
지역별로 1~2명인 시범 운영 건수가 인천에서 특히 많은 것은 인천준법지원센터 등 당국이 미결수의 사정을 고려해 적극적으로 법원에 전자 보석을 청구했기 때문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법원이 구금으로 인해 피고인이 직면한 현실적 어려움 등의 대안으로 전자 보석을 제시한 사례도 있다"며 "피고인의 구금으로 인한 가족관계 단절, 불구속 재판 원칙의 실현 등 인권 보장을 위한 일반화된 정책으로 활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