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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로 행정수도를 옮긴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세종시는 역사지리적으로 계룡산과의 연관성을 떠나 이야기하기 힘들다. 태조 이성계는 조선의 건국과 함께 계룡산으로 수도를 정하려고 하였다. 국사인 무학대사와 함께 터를 둘러보고 공사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당시 수도 이전을 반대하는 하륜으로 대표되는 이들의 주장에 부딪혀 옮기지 못했다. 명분상 반대했던 주장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지리적으로 나라의 중심이 아니라 남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수로와 연관된 물의 이용이 불편하다는 것이다. 셋째는 풍수지리적 관점에서 터가 길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남한의 중심이고 강에 배를 띄우고 다니는 시절이 아니니 문제될 게 없다. 풍수이론은 당시에 주장한 신도안 터가 아니고 또 이론상 전혀 다른 의견이 있으니 이 문제도 토론의 여지가 있는 셈이다. 정작 문제는 천도의 이유, 다시 말해 왜 옮기는가의 문제의식이다. 당시는 지금의 수도과밀 문제나 부동산 문제를 포함한 국토균형발전이라는 명분이 중심이라기보다는 고려시대와의 역사적 단절의 상징과 조선의 새 기틀 마련이라는 정치적 이유와 더불어 풍수지리의 영향이 강했다. 주역에서는 의지할 곳을 이용하여 도읍을 옮기라고 하였다. 의지할 곳의 의지란 지리일 수도 있고 천시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다. 천시의 부합과 지리의 합당과 사람들의 합의가 바로 의지처인 셈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