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셜록 홈즈다. 영국 작가 코난 도일이 1887년 '주홍색 연구'로 시작한 추리 소설 시리즈에 등장하는 주인공이다. 파이프 담배를 태우며 박물학적 지식과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사건의 진상을 단번에 추리해내는 홈즈에 영국 독자들은 열광했다. 코난 도일이 1894년 홈즈가 사망하는 '마지막 사건'으로 시리즈를 끝내자, 영국 전역에서 추모 물결이 일고, 홈즈를 살려내라는 청원이 쏟아졌단다. 심지어 모친마저 "셜록은 왜 죽인거냐"고 따지고 나서는 바람에, 코난 도일은 홈즈를 살려내 시리즈를 이어가야 했을 정도다.
어제부터 우리나라에서도 탐정업이 법적으로 가능해졌다. 1977년 제정된 신용정보법의 탐정 명칭 및 탐정업 금지조항이 삭제된 개정안이 시행되면서다. 이제 거리 곳곳에 '탐정 사무소' 간판이 내걸릴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대형 미제사건을 해결해 정의를 실현하는 셜록 홈즈와 같은 명탐정의 시대가 열릴까. 그건 아니다.
현행법상 탐정의 역할은 극히 제한적이다. 수사나 재판 중인 민·형사 사건의 증거 수집, 피의자 소재 파악은 관련법에 따라 제재받는다. 국가가 소추권을 독점한 법체계에 간섭할 수 없기 때문이다. 탐정을 고용해 배우자의 부정행위를 입증할 자료를 수집하면, 탐정은 변호사법과 개인정보보호법에 걸릴 수 있고 의뢰인은 교사범으로 걸릴 수 있다는 얘기다.
대신 탐정에게 실종가족 찾기, 소송자료 수집 대행, 보험사기 조사 서비스 의뢰는 가능해진다. 그래서 경찰만 좋아졌다는 말이 나온다. 피해 당사자에겐 절실하지만, 경찰에겐 골치 아픈 민원이었던 소소한 사건들을 탐정들이 감당해주기 때문이다. 특히 업무의 특성상 탐정업은 퇴직 경찰의 노후 대책이 될 수 있어 경찰의 오래된 숙원이 풀렸다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사기나 불륜 피해자들에게는 공권력의 서비스로 해결해야 할 사건을, 비용과 시간을 들여 사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이상한 시장이 열린 셈이다.
탐정 자격증 발행을 민간단체가 하는 것도 문제다. 공신력을 담보하기 힘들다. 기왕의 흥신소들이 탐정 사무소로 변신하는 부작용도 생각해야 한다. 법적으로 탐정시대가 열렸지만 셜록 홈즈는커녕, 억울한 범죄피의자들을 더 힘들게 하는 사이비 탐정이 넘쳐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국가공인탐정제도 마련이 시급하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