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를 모르고 오는 비는 반갑지않다
이 비가 그치면 얼마나 피해가 클까
고대 동아시아 시대는 재난이 일상
국가 부축적도 이들 백성 삶 보듬기
지금도 매한가지 공동체 힘 모을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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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미안하게도 창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반갑지 않다. 호우지시절(好雨知時節)이라. 좋은 비는 때를 알고 내린다 했는데 이번 비는 그렇지 않아서 잠 못 이루는 이들의 근심이 깊어가기만 한다. 이 비가 그치기까지 얼마나 많은 가지가 꺾이고 얼마나 많은 논밭이 물에 잠기고 또 얼마나 많은 귀한 생명이 떠내려갈 것인가.

고대 동아시아 사회에서 재난은 일상이었다. 때마다 가뭄과 홍수가 일어나고 전염병이 창궐하여 삶을 위협하고 급기야 메뚜기 떼가 날아와 수확을 앞둔 농작물을 먹어치운다. 유학의 경전 '예기'의 기록에 따르면 작은 재난은 3년에 한 번, 큰 재난은 10년에 한 번꼴로 찾아온다고 했다. 그 때문에 나라가 9년 치의 곡식을 비축하지 못하면 부족하다 했고 6년 치의 곡식이 없으면 위급하다 했고 3년 치의 곡식조차 없다면 그런 나라는 나라가 아니라고 했다. 국가가 부를 축적하는 이유는 재난이 닥쳤을 때 백성의 삶을 보살피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재난이 닥치면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이들은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이다. 유학의 이상 정치를 가리키는 말인 왕도(王道)는 바로 이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을 보살피는 통치원리였다. 맹자가 제나라에 갔을 때 제나라 왕이 왕도 정치가 무엇이냐고 묻자 맹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늙어서 아내 없는 것을 '홀아비(鰥)'라 하고, 늙어서 남편 없는 것을 '과부(寡)'라 하고, 늙어서 자식 없는 것을 '홀로 사는 사람(獨)'이라 하고, 어려서 부모 없는 것을 '고아(孤)'라 합니다. 이 네 부류는 천하에서 가장 가난하고 하소연할 곳 없는 사람들인데 이들을 먼저 보살피는 것이 왕도입니다."

맹자가 말한 '환과고독(鰥寡孤獨)' 중에서 '환(鰥)'은 본디 물고기를 가리키는 말인데, 홀아비는 근심 때문에 밤에도 눈을 감고 편안히 잠들지 못하는 것이 마치 물고기와 같다는 뜻에서 쓴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머지 세 부류, 곧 과부, 홀로 사는 노인, 고아가 편히 잠든다는 뜻은 아니며 이들도 잠 못 이루기는 마찬가지일 테고 오히려 홀아비는 그중 사정이 가장 나은 편일지도 모른다.

유학을 국가 통치 이념으로 나라를 세웠던 조선의 경우는 건국 초부터 재난이 닥쳤을 때 가난하고 외로운 이들을 맨 먼저 보살피도록 명문화했다. 왕도를 표방했던 태조의 즉위교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홀아비, 과부, 고아, 의지할 곳 없는 노인(鰥寡孤獨)은 왕도 정치를 베풀 때 가장 먼저 보살펴야 할 사람들이니, 마땅히 불쌍히 여겨 돌보아야 할 것이다. 해당 지역의 관청에서는 굶주리고 궁핍한 사람을 구휼하고 부역을 면제해 주도록 하라."

태종실록의 기사에도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인다. "의지할 곳 없는 불쌍한 백성들을 제생원에 모아들여 돌보게 했다. 의정부에 하교하기를, '환과고독(鰥寡孤獨)과 독질자(篤疾者), 폐질자(廢疾者), 실업(失業)한 백성들이 어찌 얼고 주려서 비명에 죽는 자가 없겠느냐? 내가 매우 불쌍히 여기니 여러 관청의 관리들로 하여금 빠짐없이 거두어 보살피게 하라'고 했다."

이 기록에는 맹자가 이야기한 환과고독에 더해 독질자와 폐질자까지 아우르고 있다. 독질자란 불치의 병에 걸린 이들이고 폐질자는 장애를 가진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가장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은 국가가 나서서 보살펴야 한다는 생각이 당연시되었던 것이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과학기술이 발달했다지만 재난 자체가 일어나지 않게 할 방법은 없어 보인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어려운 가운데 유례없는 폭우가 쏟아져 온 나라가 최악의 물난리를 겪고 있다. 둑이 터지고 마을이 물에 잠기고 소들이 지붕 위에 올라갔다. 어떤 이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애통해 하고 있으며 어떤 이들은 소중한 삶의 터전을 잃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다. 재난이 닥치면 가장 크게 고통 받는 이들은 언제나 평소 어렵게 살던 사람들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늘도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울 이재민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공동체 모두가 힘을 합쳐 그들을 돕는 일이다.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