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떠나 배울게 있으면 '형'호칭
도청서 근무할때 최기자·모국장 등
마음 열어 삶을 넉넉하게 해준 분들
그런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30년 전, 경기도지사 비서실에서 일할 때 얼굴이 유난히 희고 깔끔하게 잘생긴 기자 한 사람이 찾아왔지요. 그의 어르신은 경기도교육청에서 교육감 비서실장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도지사가 교육위원회 의장을 맡았었지요. 수행 비서였던 저는 매월 한 차례 교육청에서 열리는 교육위원회에 도지사를 모시고 갔습니다. 이때 도지사 비서실과 교육청 비서실이 활발하게 교류했는데, 그 인연이 후대까지 이어진 셈입니다. 아들이 경인일보에 입사해 도청 수습기자로 일하게 되자 저를 찾아보라고 했던 것이지요. 이러한 인연으로 오랜 세월 형제처럼 함께 지냈으니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자와 공직자를 떠나 누구보다 각별하고 소중한 인연이었지요.
세월이 흘러 파주 부시장으로 일할 때 '다산 청렴 봉사 대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상금이 1천만원이나 되니 많은 사람이 축하의 덕담을 건네면서 술 한 잔 사라고 했지요. 술을 즐기는 편인지라 싫은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그동안 쓴 글을 책으로 엮어 선물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표제를 '높이면 낮아지고 낮추면 높아진다'로 정하고 당시 정치 부장이던 그에게 추천의 글을 청했지요. "형! 모시던 도지사도 있고, 아는 분이 많잖아요?….", "무슨 소리야! 최 부장이 나를 잘 알잖아." 최 부장의 추천사는 압권이었습니다. 기자니까 기본적으로 글을 잘 쓰는 게 당연했지만, 사람들은 한 결 같이 최 부장 글을 읽으니 끝까지 읽지 않아도 담긴 글 내용을 알 것 같다고 입을 모았지요. 그만큼 그는 저를 잘 알고 있던 것입니다.
민선 L지사 비서관으로 일할 때는 휘뚜루마뚜루 일을 참 잘하는 능력자인 데다가 성격이 유연하면서도 호방해 따르는 사람이 많은 국장이 있었지요. 제가 도지사 수행비서로 일할 때 그는 내무부 장관 수행 비서였습니다. 이때부터 교분을 쌓았는데, 고향인 경기도로 돌아온 것이지요. 자연스럽게 함께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그런데 그가 사석에서는 누가 있든 저에게 꼭 형이라고 불러 가끔 난처해질 때도 있었지요. 문화정책과장으로 일할 때 시흥부시장이던 그가 문화 관광국장으로 와 첫 회식을 하는 자리에서도 "형! 잘 부탁해요"라고 했습니다. 함께 한 사람들이 깜짝 놀랐지요. 이제 직속상관이니 제발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형은 형이라면서 호칭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퇴직 후에도 그 인연이 이어지고 있는 지금도 형이라고 부르고 있지요.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고 그들에게 직함을 붙여 불렀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많거나 어리거나를 떠나 인간적으로 배울 게 있으면 이름 뒤에 '형'이라는 호칭을 붙여 불렀지요. 다섯 살 어린 후배 한 사람에게도 형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부르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존경한다는 의미를 담는 방법인 셈이지요. 나이가 많고 지위가 높다고 무조건 형이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나름 배울게 많고 존경할 만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야만 형이라고 부르지요. 형이라는 호칭을 붙여 부를 수 있는 분이 있다는 건 기쁘고 행복한 일입니다. 삶의 의미를 더 넉넉하게 해주는 분이 있다는 것, 그것은 축복이고 감사한 일이지요. 형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분이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홍승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