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정의 발원지인 고대 아테네 시민들은 새해 초에 열리는 민회에서 공직자 추방 선거 실시 여부를 결정했다. 선출된 권력자들이 독재할 기미가 보이면 선거를 결정하고, 투표를 통해 추방 여부를 확정했다. 추방이 확정되면 국경 밖으로 10년간 추방된다. 추방 후보의 이름을 도자기 파편에 적어냈다 해서 도편추방제다. 선출직 권력자들의 독재를 예방하기 위한 장치였다.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권력자들은 정적들을 도편추방제로 제거했다. 살라미스 해전 승리로 페르시아로 부터 그리스 전체를 구한 테미스토클레스도 권력 다툼 끝에 도편 추방됐을 정도다.
선출직 공직자에 대한 유권자의 통제는 민주주의에서 큰 숙제다. 뽑아 놓고 보니 반민주적 행태를 보이거나, 범법을 자행하거나, 인격 파탄자이거나, 무능한데도 그냥 두고 볼 수 없다. 헌법이 국회에 탄핵소추권을 보장한 이유다. 국회는 대통령, 국무총리, 장관, 법관, 검사를 탄핵소추 할 수 있고, 탄핵 심판은 헌법재판소가 맡는다. 최고위 선출직인 대통령과 고위 임명직들이 헌법상 의무에서 일탈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대의기구인 국회에 힘을 실어 준 것이다.
그런데 정작 선출직인 국회의원 300명은 유권자의 통제에서 완전히 자유롭다. 국회 제명과 선거법 등 범법으로 인한 유죄판결 이외에는, 유권자가 중간 심판이 불가능하다. 반면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 교육감 등 지방선출직들이 주민소환제의 대상이다. 실제 2007년 하남시의원 2명이 주민소환 투표로 직을 잃었고, 단체장들은 중대한 행정과실이 발생할 때 마다 주민소환 압박에 시달린다. 오직 국회의원들만 헌법에 보장된 임기를 다 누리는 탓에 막장 국회가 됐다는 개탄도 있다.
민주당과 열린민주당이 총선공약이라며 경쟁적으로 국회의원 국민소환법 제정안을 내놓았다. 부동산 관련법을 일사천리로 처리한 슈퍼 여당과 자매당의 뜻이 일치한 만큼 마음만 먹으면 국회 통과는 문제 없다. 문재인 대통령도 2018년 제안한 헌법개정안에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를 담았다. 지난해엔 국민 80% 이상이 국민소환제를 지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었다. 미래통합당도 딴지를 걸어 미운 털 박힐 이유가 없다.
지금 여야엔 국민 눈높이와 상식과 법에서 벗어난 국회의원들이 널렸다. 국민 손에 소환당해봐야 정신 차릴 수 있다면 부작용을 우려할 일은 아니지 싶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