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 폭염의 절정은 '삼복(三伏)'이다. 초복·중복·말복은 10일 간격인데, 올해처럼 중복과 말복 사이가 20일인 해가 있다. 월복(越伏)이라 한다.
중국 진나라에서 유래한 삼복 절기는 동양 철학 사상인 '오행설'에 바탕을 둔다. 설에 따르면 여름철은 '화(火)'의 기운, 가을철은 '금(金)'의 기운에 해당한다. 금 기운이 대지로 나오려다가 아직 화의 기운이 강렬하므로 일어서지 못하고 엎드려 복종하는 기간이 '삼복'이라는 것이다. '엎드릴 복(伏)' 자를 쓰는 까닭이다.
어린 시절, 어느 복날에 친척들과 함께 개천가로 천렵을 갔다. 형들이 끄는 손수레에는 냉동 삼겹살과 생닭 몇 마리, 수박, 참외 등 먹거리가 채워졌다. 다리 밑 응달에 솥을 걸어 닭죽을 끓이고, 돌판에 삼겹살을 구웠다. 물놀이를 하다 지치면 쉬고, 먹기도 하면서 냇가에서 놀았다.
스무 명 넘는 일가족이 종일 먹고 마시고 떠들었다. 모두가 힘든 시절, 친족이 정을 나누는 유쾌한 연례행사였다. 난간도 없는 콘크리트 다리는 부서지고 넓고 높은 새 교량이 만들어졌다. 즐거웠던 동심(童心)의 추억만 희미하게 아른거린다.
복달임은 복날 더위를 피하려 술과 음식을 마련해, 계곡이나 산정(山亭)을 찾아가 노는 풍습이다. 궁중에서는 신하들에게 빙과(氷菓)를 주고, 궁 안에 있는 장빙고에서 얼음을 나눠 주었다 한다. 민간에서는 더위를 막고 보신을 위해 계삼탕(鷄蔘湯)과 구탕(狗湯)을 먹는다. 금이 화에 굴하는 것을 흉하다 하여 복날을 흉일이라고 믿고, 씨앗뿌리기, 여행, 혼인, 병의 치료 등을 삼갔다고 한다.
말복(15일)이 지났다. 올해는 월복인데도 중부지방에 이렇다 할 더위가 없었다. 54일 장마에 햇볕보기가 힘든 이상기후에 비 피해가 잇따랐다. 중부지방은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됐다. 반짝 특수를 기대한 피서지와 식당은 비명이다. 복날 삼계탕집에 줄 서는 광경이 사라졌다. 중복과 말복은 주말과 겹쳤다. 엎친데 덮친 격이다.
삼복 다 지나 폭염이 시작됐다. 그런데 낭패다. 이제 햇볕 좀 보나 하는 찰라에 코로나19 수도권 대유행 공포가 퍼지고 있다. 정부의 외식 쿠폰도 없던 일이 됐다. 삼복 더위를 못 느끼고 지나서인가, 코로나 폭염이 더 힘겨울 듯하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