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발전 수도권 옥죄는 10중족쇄 수정법
그래도 인구 전국 절반 넘어서 규제의 역설
수도 옮겨도 집중 지속땐 새법 덧씌울건가
화성 천도(遷都)를 꾀한다는 괴이한 말이 돌았다. 노론 벽파는 신하의 도리를 저버렸고, 한양 궁궐은 그의 숨통을 조였다. 정조는 천도를 말하지 않았다. 역사의 짐작일 뿐이다. 행적으로 미뤄 의지는 강했던 듯하다. 재위 25년, 정조가 요절했다. 독살이라 했으나 사인은 풀리지 않았다. 천도는 잊혔다.
여당 대표가 수도이전 카드를 꺼냈다. 대한민국 수부 도시를 세종으로 옮기자는 거다. 행정수도 건설과 공공기관 이전만으론 부족하다고 한다. 당 대표와 동료 의원이 그를 거든다. 서울은 '천박한 도시'가 됐다. 아파트값이나 들먹이는 속물들의 집합체다. 서둘러 명군(名君)의 땅으로 옮겨야 한다. 민주당은 수도 이전을 위한 특별 기구를 설치했다. 일사천리다.
천도론은 정치적 득실이 바탕이다. 부동산 정책 실패를 반전할 출구 전략이다. 세금 폭탄이 불발했고, 공급 정책도 힘을 못 쓴다. 실기(失期)한 때문이다. '집값이 안정되고 있다'는 말은 기대치가 더 반영된 수사다. 23차례 땜빵 보수에 정책은 만신창이가 됐다. 국민은 정부 말을 믿지 않는다. 경질된 청와대 수석은 마지막 회의장에 없었다. 내부 균열에 담장 밖까지 시끄럽다. '권력은 짧고, 부동산은 길다'고 수군거린다.
서울·경기·인천은 수도권 공동체다. 서울이 노른자라면, 경·인은 흰자위다. 보완과 완충의 관계다. 함께 국가 발전을 견인했고, 선진국 진입의 주역이 됐다. 맏형을 위해 동생은 힘을 보탰고, 희생도 마다하지 않았다. 힘들 때 밀어주고, 때론 가림막이 됐다. 1천만 시민의 식수는 광주 땅 팔당이고, 쓰레기는 인천이 받아낸다. 분당과 평촌, 일산 신도시는 80년대 후반 건설됐다. 폭증하는 강남의 주택 수요를 땜질하려는 고육책이다.
역대 정부는 40년 넘게 중첩된 규제로 수도권을 옥죄었다. 1982년 말 제정된 수도권정비계획법이 핵심이다. '군사시설보호구역' '개발제한구역' '팔당특별대책지역' '농지법' '산업집적 활성화 및 공장 설립에 관한 법률' '군사시설보호법' '조세특례제한법' '지방세법' 등 10여 개 규제법령이 적용된다. 그런데도 산업과 인력 집중은 더 심화했다. 수도권 인구가 전국 절반을 넘어섰다. 규제의 역설이다.
정치권력은 16년 전 사법부의 수도이전 불가 결정을 부정하려 한다. 관습과 전통에 대한 거부다. 힘없는 자들의 대의와 명분은 무력 앞에 초라해진다. 서울이 수도여야 한다는 주장과 외침은 무기력하고 공허하다. 천도는 살아있는 권력의 의지에 달렸다. 정부 여당은 욕망을 제어하지 않는다.
600년을 넘게 버틴 고도(古都)는 늙고 허약하다. 배산임수는 철 지난 풍수지리다. 물산의 이동수단이 다양한 지금, 콘크리트 제방 한강의 매력은 무엇인가. 성장 발전성에도 의문은 커진다. 매년 인구가 줄고 있다. 균형발전과 분산은 당위성이 충분하다. '균형발전과 수도권 집중 완화를 위한 새로운 모색이 필요하다'는 여당 대표 말은 틀린 게 없다.
수도 이전의 동력은 힘의 크기다. 헌법 개정, 헌재 판결도 여권 의지대로 움직일 것이다. 이미 행정수도가 건설된 마당이다. 국회와 청와대를 옮기는 건 별 어려울 게 없다. 나라에 도움이 된다면 못할 게 없다. 정작 걱정은 다른 데 있다. 수도를 이전하고도 '수도권 규제'는 남겨둘 것이란 예감에서다.
수도를 옮기고, 수도권 집중 현상이 해소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계속 조이고, 여의치 않으면 새 규제를 덧씌울 건가. 그 결과 분산과 균형발전이 아니라 활기를 잃고, 국력이 쇠락한다면 어찌 되는가. 그건 공망(共亡)일 것이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