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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를 소재로 한 할리우드 영화의 단골 메뉴는 요인(要人) 암살이다. 특수 요원이 표적물에 접근해 총으로 저격하거나 독극물을 투입하는 과정이 정밀하게 묘사된다.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단골 메뉴다.

2006년 러시아 출신 전직 연방보안국(FSB) 요원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 살해사건은 영화보다 흥미롭다. 영국으로 망명한 후 푸틴 정권을 비판하는 활동을 하던 리트비넨코는 그 해 11월 FSB 동료를 만난 후 사망했다. 그가 마신 것으로 추정되는 찻잔에서 '폴로늄'이라는 인공 방사능 물질이 검출됐다. 러시아는 지금까지 사건 개입을 부인한다.

러시아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가 지난 22일 비행기 안에서 갑자기 발작하다 의식을 잃어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와 동행한 측근은 '나발니가 여객기 탑승 전 공항에서 입에 댄 것은 차(茶)밖에 없었다'며 독살(毒殺) 기도 가능성을 주장했다. 정부 공작 세력이 나발니에게 독극물을 주입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다.

나발니는 지난해 7월에도 모스크바의 한 구치소에서 성분 불명의 화학물질에 중독돼 알레르기성 발작을 일으켜 입원해야 했다. 당시 그는 푸틴 대통령이 유력한 무소속 후보들의 입후보를 막아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을 때 시위 선동 혐의로 체포됐었다. 그는 푸틴 대통령에 대한 최강의 정적으로 평가받는 러시아의 대표적 반체제 인사다. 러시아는 반체제 인사와 배신자에 대한 무자비한 응징으로 악명이 높다. 특히 배신자를 망명지까지 추적해 살해함으로써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대체로 치명적인 독극물을 사용하나 여의치 않으면 무차별 총격을 가하기도 한다. 지난 2016년 11월에는 야권 지도자인 보리스 넴초프가 총격으로 숨졌다. 연인과 함께 모스크바 강 다리를 걷던 그는 차량을 탄 괴한들이 쏜 총에 4발을 맞아 현장에서 숨졌다.

반(反)푸틴 정치인과 기업인들의 테러 배후에 러시아 정보부 개입 의혹이 끊이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독극물 표적이었다고 한다. 암살 사건에 대해 러시아는 이중 태도를 보인다. 심중은 의도적으로 드러내지만, 물증은 끝까지 부인하는 것이다.

'스트롱 맨' 푸틴의 근육 자랑은 노골적이다. 외교는 무력으로, 내치(內治)는 정적에 대한 탄압으로 군기를 잡는다. 서방세계의 외톨이일 수밖에 없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