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북상덕 중심서 비껴 났지만
곡창지대인 장안뜰 벼 피해 뚜렷
복구나선 죽산면주민 '안도 한숨'
인천은 시설물·도로파손 등 발생
"벼잎마름병이 큰일이야."
27일 오전 찾은 경기도 최대곡창지대 중 하나인 화성시 장안면 장안뜰(남양호). '역대급'이라던 8호 태풍 '바비(BAVI)'가 매우 빠르게 북상하면서 경로를 예상보다 서쪽으로 40~50㎞ 이동한 덕에 경기도는 태풍의 중심에서 벗어나 스쳐 지나갔다.
애초 순간최대풍속도 초속 40~60m까지 예상됐지만, 실제 기록은 화성시 도리도 초속 27m, 김포공항 25.9m, 연천 장남 25.4m, 포천 영중 25m, 파주 도라산 24.9m, 김포 대곶 23.6m 등을 기록했다.
10분간 평균최대풍속도 화성 도리도가 초속 22.7m, 안산 풍도 초속 13.8m, 평택 초속 11m 등이었다. 경기도 내 평균최대풍속도 초속 9.3m를 기록했다. 바비는 이날 오전 5시30분께 북한 옹진반도에 상륙했다.
하지만 바비가 스쳐 지나간 지 반나절 가량 흘렀음에도 체감 바람은 여전했다.
이를 보여주듯 장안뜰 곳곳에서 수확의 날을 기다리던 벼들이 강풍으로 쓰러져 있었다. 일부 논에선 벼가 하얗게 말라 죽는 벼잎마름병이 관찰되기도 했다. 벼잎마름병은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바람이나 침수로 상처 난 벼 잎에 병균이 침투해 잎이 말라 죽는 병이다.
장안뜰의 한 논에서 만난 유금수(90)씨는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최근 퍼지던 벼잎마름병이 더 확산될까 두렵다"며 "방제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수마가 휩쓸고 간 안성시 죽산면 일원은 잔여 태풍 기운으로 인한 바람이 약간 불뿐 고요했다. 구름들 사이로 햇볕이 뜨겁게 내리쪼였다. 죽산면 남산마을은 마을 사람들 저마다 복구작업를 하고 있었다. 길가에 가득했던 산사태 잔여물은 대부분 치워져 있었고, 일부 무너진 집들도 수리를 끝냈다.
바비가 경기도를 스쳐 지나가면서 이곳 주민들도 정상화가 가까워졌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폭우 이후 태풍까지 와 걱정은 있었지만, 태풍이 온 지도 모를 정도로 별 피해가 없었다는 것. 주민 곽병학(72)씨는 "여긴 태풍이 지나간 줄도 몰랐다"며 "피해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날 경기지역에서도 바비로 인한 피해 사례는 비교적 크지 않았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 집계현황에 따르면 전날 오후부터 이날 오전까지 태풍과 관련한 119신고 68건을 처리했는데, 건물·도로에 대한 안전조치 요청이 전부였다. 유형별로는 주택 15건, 도로장애 17건, 간판 낙하 등 12건, 기타 24건이었다. 인명피해는 경상 1명으로 집계됐다.
인천지역에서도 외벽 붕괴 등 시설물 피해가 42건 발생했고 간판 추락 등 16건, 주택·상가 건물 등 주거 시설 피해 11건, 가로수 관련 피해 10건, 싱크홀 등으로 인한 도로 파손 등이 5건 발생했다.
한편 일부 날씨 앱에선 주말께 필리핀 인근에서 9호 태풍 '마이삭'이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다음 태풍 발생 시기·강도를 예단하긴 어렵다. 기상청 관계자는 "수치모델에서 9호 태풍의 가능성을 보고 있으나 아직 변수가 너무 많다"며 "발생 후에나 경로나 강도를 분석할 수 있다"고 전했다.
/김영래·김동필·박현주 기자 phiil@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