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고한 희생초래 폭력탓 전쟁 혐오
코로나 '2차 유행' 국민들 고통시기
의료계 파업·일부 대면예배 강행은
공동체 외면 배타적자유 외치는꼴
절제없는 삶은 야만… 사람의 길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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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전쟁이 혐오스러운 까닭은 무고한 희생을 초래하는 잔인한 폭력 때문이다. 양민학살이 대표적이다. 어두운 진실이지만 제주에서, 거창과 노근리 등에서 죄 없는 평범한 시민이 '빨갱이'라는 심증만으로 무고하게 학살되었다. 누가 그들을 죽였는가. 총이 그들을 죽였다고 대답할 수는 없다. 총은 직접 그의 목숨을 끊은 작동 원인(작인)이지만 그 뒤에는 이념에 매몰된 이들, 서북청년단 같은 폭도들, 전쟁을 일으킨 북한과 자국의 국민을 죽음으로 몰아간 잘못된 체제가 원인으로 자리한다. 코로나19의 2차 유행을 눈앞에 두고 온 사회와 대부분의 시민이 엄청난 고통과 불안에 떨고 있다. 이 사태의 작인은 분명 바이러스이지만 원인이 병원균이라고 말한다면 그야말로 무책임한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작인을 넘어 원인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 바이러스는 백신과 치료제로 극복할 수 있을테지만 이 사태를 초래한 사회적 문제는 원인에 대해 질문할 때만이 극복할 수 있다. 인수공통 바이러스가 인간을 침해한 원인으로 생태계파괴를 비롯한 환경위기를 거론하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또한 지금과 같은 2차 유행은 명백히 사회적 원인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에 덧붙여 뜬금없는 의료계 파업 사태로 전 국민이 초조함과 불안감에 휘둘리고 있다. 의료수가 문제나 공공의료 문제 등 파업의 정당한 이유를 진지하게 들으려는 이들 조차도 파업에 반대하는 까닭을 그들만이 모르는 것일까? 종교자유란 명목으로 예배를 강행하겠다는 일부 교회에 대해 왜 전 국민이 분노하는지를 그들만 외면한다.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작인을 밝혀야 하듯이 사회적으로 광폭하게 확산되는 2차 대유행의 원인을 분석해야 한다. 바이러스가 몸을 해친다면 사회적 바이러스는 우리 삶의 터전과 공동체를 파괴시킨다. 사회적이며 심층적 맥락에서 이 사태의 원인을 해명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새로운 문명·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위기는 언제나 기회가 아닌가. 개인은 물론 사회나 국가도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는가에 따라 도약할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근대의 제국주의적 침탈 이후 100여 년 동안 우리는 수많은 위기를 기회로 활용해 지금과 같은 문화와 안정을 이룩했다. 지금은 문명의 전환기다. 산업사회로서의 근대는 수명을 다했지만 새로운 사회는 어두움 속에 잠겨있다. 끊임없이 근대 이후와 탈근대 담론을 말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 기회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전적으로 우리의 몫이다. 그 우리는 공동체를 생각하면서 자신의 개인적 자유를 유보하는 이웃들, 평범한 시민들, 바로 당신과 내가 우리다.

그런데 대면 예배가 종교자유라고 왜곡하는 이들, 종교인 과세를 탈세의 수단으로 삼으면서 종교자유를 외치는 이들은 누구인가? 법의 이름으로 자신과 집단의 사익을 추구하는 이들이 우리일까. 공공의료의 이름으로 자신이 가진 경제적 기득권을 독점하려는 이들이 나의 이웃인가. 온갖 불법과 탈법적 행동으로 국민적 기업을 상속받으려는 사람이나, 그런 불법을 경제적 안정이란 허상으로 왜곡하는 그들은 누구인가. 언론 자유의 탈을 쓴 채 끊임없이 사실을 왜곡하고 가짜뉴스를 양산하지만 필요한 분석과 전망을 애써 무시하는 퇴행적 언론이 우리일 리는 없다. 한 번의 시험으로 사회적 특권을 독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양산한 교육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공공성 개념을 무시한 채 시장의 배타적 자유만 외치는 반쪽짜리 자유주의자가 흘러넘치는 까닭은 무엇인가.

물어야 하며 대답하고 행동해야 한다. 기득권의 배타적 특권에 맞서야 한다. 그럴 때만이 위기를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지난 100여 년 동안 우리를 지배해온 산업과 자본의 일면적 논리를 넘어 인간다운 삶과 공동체를 살려낼 또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경제 성장이라는 맹목을 넘어 더불어 함께 살아갈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지 않으면 우리는 파멸할 것이다. 가보지 않은 길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익숙한 삶의 경로와 존재 양식을 바꾸지 않으면 위기는 되풀이된다. 성찰과 절제 없는 삶은 야만일 뿐이다. 사람답게 살려면 사람의 길을 걸어야 한다.

/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