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장 오래 머무를 수도 없고
시도때도 없이 울리는 재난문자
개인 사생활 보장 희생시켜 '안전'
20년간 한국사회 개방 내달렸지만
폐쇄된 시대… 시민의식 작동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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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코로나19'의 재확산은 우리들 삶을 급격하게 변화시키고 있다. 다른 어떤 힘도 해내지 못한 일을 '코로나'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 다 해내고 있다.

오늘은 오전이 다 되도록 '안전 안내 문자'라는 것이 하나밖에 오지 않았다. 내용인 즉슨, 9월6일까지 코로나 대응을 위한 수도권 강화 조치를 시행한다는 것이다. 음식점이나 제과점은 21시 이후에는 포장, 배달만 허용된다고 한다. 프랜차이즈 커피숍도 포장, 배달만 허용되며, 학원과 실내체육시설은 집합이 금지된다고도 한다.

어제는 모두 다섯 개의 문자를 받았는데, 오늘 받은 것과 같은 내용 문자 둘에 은평구, 고양시, 동작구 등에서 보내온 확진자 발생 안내 문자들이었다. 어제 고양시에 간 일이 없는데 은평구 가까운 곳이라서 온 것 같기도 하고, 동작구는 확실히 중앙대학병원 장례식장에 다녀온 일이 있었다.

선배 작가의 모친상을 치르는 장례식장은 출입구부터 체온을 체크하고 방문객 정보란을 작성하고 스티커를 발부받아야 했다. 벌써 몇 달째 서너 번은 꼭 같은 절차를 밟아 문상을 했고, 조문 이후에는 결코 오래 머무를 수 없었다. 어제는 앞으로 오래 보지 못할 선배를 만나 바깥을 나가 음식점을 찾았지만 대부분 철시 분위기에 그나마 연 곳도 여덟 시 반까지만 영업한다고 했다.

그저께는 문자가 세 개가 왔고, 더 며칠 전에는 여섯 개, 그 전날은 여덟 개까지도 받은 기록이 있는 것이 확인된다. 그러니까 재난 문자가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상황인데, 하루 확진자가 삼백명을 넘어서고 태풍 '바비'에 '마이삭'이 온다면서 문자 세례는 더욱 빈번해졌다.

그전 같으면 미세먼지 안내문자 같은 것을 받으면서도 뭔가 푸코적인 감시의 시선이 나 자신을 따라붙는 것 같은 불안감을 예민하게 의식할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 이런 문자는 일상의 풍경이 되어버린 것 같다. 개인의 사생활의 보장을 희생시켜 안전이라는 두 글자를 선사받은 것이다.

이와 같은 예외 상황, 예외 조치가 코로나 19 재확산 속에서 사회 모든 곳에 '침투'하고 있다. 각급 학교에서는 앞으로 언제까지일지 모르나 학생들이 함께 등교하는 것도 어려워졌고, 대학에서는 당분간 거의 모든 수업을 '비대면'으로 진행해야 하며, 각종 교수회의나 개강모임, 학술답사 등등도 언제 정상화 될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모든 '정상적' 일정 소화가 불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더 간접적이고 축소된, 그래서 안전을 도모하는 방식들이 모든 곳에서 선호되고 있다.

언론과 정부가 계속해서 '가짜뉴스'에 대한 경계, 경고와 비판을 쏟아내고 있는 것도 아예 새로운 현상은 아니지만 확실히 최근 들어 빈번해진 감이 있다. 이 가짜뉴스라는 것이 옛날 같으면 '유언비어'일 것이요, 가짜뉴스 제작 유통은 유언비어 유포 행위에 해당할 것이다. '간첩' 잡으라던 그 옛날에 공포심을 자아내던 이 '유언비어'라는 말이 이제 '가짜뉴스'라는 것이 되어 우리 생활 주위에 유령처럼 출몰, 범람한다는 것이다.

유튜브며 페이스북이며 트윗, 그리고 수많은 사회 관계망 온라인 서비스(SNS)들은 확실히 신빙성 없는 정보들을 순식간에 대량 전달 가능한 상황을 창출했고, 이는 특히 오늘날과 같은 역병 창궐 시대에 치명적인 독소를 뿜어낼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가짜뉴스'라는 낙인이 한 번 찍히면 아무리 용을 써도 몸을 빼낼 수 없는 시대적 함정도 없다고 할 수 없다. 현상들의 종합, 분석, 추리에 바탕을 둔, 특정한 시각의 '정상적' 활동들이 자칫 '가짜'라는 낙인이 찍혀 무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1세기 들어 지난 이십 년간 한국 사회는 그야말로 열정적으로 개방과 교류를 향해 내달려 왔다. 코로나19 시대는 이 역사적인 활동적 국면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제 사람들은 폐쇄적이고 고립적인 삶을 '강요당하고' 있다. '비대면'의, '언택트(untact)'한, 포장과 배달로 접촉을 최소화 하는 삶이 일상화 되고 있다. 모든 출입과 이동에는 기록이, '큐알 코드'가, 음산하게 표현하면 '666'의 낙인이 뒤따른다. '코로나19' 대유행은 과연 언제쯤이나 정리될 수 있을까? 백신도 치료제도 소문만 무성한 지금 올해는 너끈히 넘길 것 같은 역병의 위력이다. 이 예외적 상황의 예외적 조치들은 과연 역병이 물러나면 더불어 사라질 수 있는 것일까? 개인들의 사적 정보들이 안전을 위해 공유되고, 너무 많은 통제들이 정당화 되는, 이 예외적 시대를 향한 시민적 의식이 살아 작동해야 할 것이다.

/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