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뒤 시작된 야간통행금지는 1982년 초까지 이어졌다. 통금 시간대는 세상이 조용했다.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 집 밖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후 11시부터 12시 사이, 서울은 귀가 전쟁이 극심했다. 부처님 오신 날과 성탄 이브, 12월 31일은 예외였다. 이런 날, 명동·종로통은 자유를 찾아 나선 청춘들로 들끓었다.
밤 12시 사이렌이 울린 뒤 거리에 남은 시민은 경찰서에 구금됐다, 오전 4시에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학원도 교습 시간을 줄여 야간 통금에 맞추었다. 당시 김포공항에 착륙하지 못한 국제선 비행기는 일본이나 홍콩, 타이완 등지로 회항해야 했다. 먼 옛날 얘기가 아니다.
통금을 해제한 건 전두환 군사정부 초기 시절이다. 안보와 사회질서 유지를 명분으로 한 조치를 군사정부가 끊어냈다. 대민(對民) 유화책이다. 국민 생활은 확 달라졌다. 술집과 식당의 심야 영업이 일반화됐다. 젊은이들은 시간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의 밤을 보냈다.
1990년, 노태우 정부는 유흥업소의 영업을 자정까지 제한했다.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다. 시간 제한이 없는 길거리 포장마차가 애주가들의 발길을 잡았다. 노래방에서 문을 잠그고 망을 보면서 영업하다 적발되기도 했다. 탈·불법의 온상이 된 심야영업 제한은 95년 자율화됐고, 99년 폐기됐다.
수도권에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가 시행되면서 음식점 영업이 밤 9시까지 제한됐다. 다음날 오전 5시까지는 포장·배달만 가능하다. 배달주점, 호프집, 치킨집, 분식점, 패스트푸드점, 빵집 등이 같은 지침을 적용받는다. 헬스장, 골프연습장, 당구장, 볼링장, 수영장, 무도장, 탁구장 등 실내 체육시설은 죄다 문을 닫았다.
자영업자들의 한숨이 커진다. 빵집은 되고 카페는 안되는 이유가 뭐냐는 불만도 있다. 힘들다 보니 짜증이 나고, 불만이 폭발하면서 엉뚱한 사고가 잇따른다. 마스크 때문에 지하철에서 난투극이 벌어지는 '웃픈' 나라가 됐다.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는 세상이다. 범죄와의 전쟁을 떠올리게 하는 '9시 영업제한'은 낯설고 어색하다. 90년대, 영업시간이 지난 술집에서 '단속 나오라 해'라고 호기를 부렸다. 헛웃음 짓게 만드는 젊은 날의 추억이다. 인간사(人間事) 잠깐일 뿐이다.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