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공연장·행사는 '이젠 옛말'
더본질적인 변화의 시점에 서있어
속도와 성장 반성 작은공동체 관심
생태주의문학 인류사적 과제 부상
팬데믹시대 문학적 출구전략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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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코로나 19'로 빚어진 지구촌 전체의 재난이 인류의 삶을 근본에서부터 바꾸어가고 있는 듯이 보인다. 통째로 위기를 맞고 있는 그동안의 주류적 삶의 방식에 대한 대안적 실천이 요청되고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이제 10만 관중이 운집한 채 치러지는 월드컵 결승전이나 수만명이 동시에 출발선을 떠나는 마라톤 대회는 당분간 보기 어려울 것 같다. 오케스트라 공연장을 가득 채운 수많은 청중이나 한국 영화의 천만 관객도 어쩌면 2020년 이전의 신화로 사라질지도 모른다. 물론 단기간에 어떤 대안 모형이 마련된다면 이러한 변화 양상이 스포츠나 공연 예술의 급격한 퇴조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 점에서 참여자 감소 문제는 팬데믹 사태가 불러온 변화 가운데 가장 비본질적인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보다는 더 본질적인 변화가 예상되는 시점에 서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인간의 운명은 생로병사라는 과정적 표현에 압축되어 있다. 태어나 나이 들어 병들고 결국 사라진다는 것, 이것이 불가피한 인간의 보편적 존재론이다. 그 가운데 우리를 한없이 소모시키고 죽음에 접근시키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을 확연하게 확인시키는 물리적 사건은 아마도 '질병'일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우리의 몸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신의 존재증명을 위해 여기저기 아픈 곳을 드러낸다. 그동안 한국문학에서 이러한 질병의 양상은 개인적 차원에서 발원하는 생리 현상이자 공동체적 소진의 운명을 견뎌가는 은유로 동시에 나타난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자연스러운 과정으로서의 질병과는 전혀 다른 '감염병'의 낯선 침입은 삶에 대한 여러 비유 체계를 생성해내면서 새로운 문학적 형상과 의미를 부여해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한국문학에서 감염병을 형상화해가는 과정은 커다란 역사적 함의를 띠면서, 그동안 근대문학이 주목했던 '질병의 은유'를 부수고 새로운 차원으로 비약해갈 것이 틀림없다.

미셸 푸코는 '감옥의 탄생'에서 감옥, 병원, 군대 같은 장치가 서로 다른 기능을 수행하면서도 사실은 권력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주체를 생산하는 제도라고 비판한 바 있다. 근대문학에 나타나는 이런저런 '병원' 역시 권력을 대리 집행하는 기능을 줄곧 수행하였다. 근대문학은 치밀하게 편제된 권력 장치에 의해 배제되거나 억압되었던 삶을 시종 재현하고 증언하였다. 짐짓 외면하기 쉬운 잔혹하고 폭력적인 장면을 통해 작가들은, 멈포드가 '예술과 기술'에서 언급하였듯이, "폭력과 허무 곧 인간성의 말살이야말로, 현대예술이 가장 자유롭고 가장 순수한 계기들을 통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메시지"라는 전언을 강하게 상기시켰던 것이다. 이때 작가들이 펼쳐낸 근대적 사유란 서구 근대과학과 문명이라는 담론과 강력하게 결합하면서 동시에 그것과 경쟁하고 갈등하는 복잡한 상호과정을 포함한 것이었다.

이제 몸의 가치와 의미를 결정하는 의학, 생리학, 위생학, 가정학 그리고 질병 관리와 인구 조절을 담당하는 보건 의료 시스템이 일본과 서구의 지속적 영향 아래 형성되어왔다는 점은, 새로운 차원의 의료 시스템의 완비와 함께 한국문학 내부에서도 감염병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요청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미증유의 감염병은 어떠한 형상과 의미로 한국문학에 수용될 수 있을까.

우리는 근원적 차원에서 증언록과 묵시록의 속성을 결속하면서, 근본주의적인 생태적 사유를 기저에 깔면서, 그동안 속도와 성장에 취해 벌려놓은 스스로의 과잉을 반성하면서, 이제 자발적으로 가난해지면서, 작은 공동체를 중심으로 하는 태도를 가짐으로써 이러한 과제를 인류가 수행해가리라 생각해본다. 1990년대 한때 유행 흐름을 띠었던 생태주의 문학은 이때 새로운 인류사적 과제로서 재설정되면서 '포스트 코로나'가 아닌 '위드 코로나' 시대의 미학적 항체를 만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 길만이 지금 시대를 넘어서는 최선의 문학적 출구 전략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그리고 우리는 그때 이 낯선 팬데믹 시대를 되돌아보는 성찰의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