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폭락하자 개인투자자는 묻지마 매수
주식 열기 신용융자 잔고 '역대 최고 16조'
400년전 '네덜란드 튤립광풍' 떠올라 공포

튤립이 네덜란드의 국화(國花)로 자리매김한 배경에는 천박한 자본주의가 한몫 거들었다. 수요가 증가하면서 꽃값이 상승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부나방처럼 화훼시장에 몰려들었다. 전 재산을 팔아 텃밭 한 조각을 사서 구근(球根)을 키우는 사람들이 생기는 등 꽃값이 계속 오르는 동안에는 모든 사람들이 돈을 벌었다. 투기자본이 가세하면서 튤립가격은 천정부지로 뛰어 1637년에 유명한 셈페르 아우구스투스종 구근 1개 값이 1만 길더를 기록했다. 당시 웬만한 주택 한 채 가격이었다.
천정부지의 튤립 값에 실망한 사람들이 한 둘씩 시장에서 발을 빼기 시작하면서 1637년 2월 이후 구근 값이 점차 떨어졌다. 투매가 시작되었지만 구매자는 없었다. 막차를 탔던 사람들부터 파산하기 시작하면서 단기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홈리스로 전락했다. 투기는 인생역전을 노리는 가난한 사람들의 꿈을 먹고 자랐다가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유럽역사에서는 이 사건을 '튤립광기(tulipmania)'라 부른다.
'빚투족', '동학개미', '병정개미' 등 생경한 용어들이 자주 눈에 띈다. '빚투'는 '미투(me too)'에 빗댄 '나도 빚을 냈다'는 의미이다.
정부의 잇따른 부동산대책이 화근이다. 고강도 주택담보 대출억제가 효력을 발하기 전에 서둘러 마이홈을 마련하려는 2040세대 중심의 대출러시가 빚투의 물꼬를 텄다. 신종코로나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설상가상이었다. 지난 3월 기관과 외국인 투매로 국내 주식가격이 폭락하자 개인투자자들이 매수해 '바이 코리아' 재연 우려를 불식하면서 1894년 '동학농민운동'에 비유해 '동학개미'란 신조어가 등장했다.
올 들어 개인은 국내 증시에서 47조2천182억원을 순매수했다. 같은 기간 외국인이 26조3천29억원, 기관이 20조9천425억원을 팔아치운 것을 감안하면 국내증시는 개인투자자들이 견인한 셈이다.
소셜미디어에서 주식으로 돈을 벌었다는 사례들이 빈발하면서 요즘 청년들은 은행통장보다 주식계좌를 먼저 만든다. "돈을 벌 데는 주식밖에 없다"는 인식이 확대되면서 군대에서도 주식열풍이 불어 '병정개미'들도 양산되고 있다. 내무반 곳곳에서 병사들이 스마트폰의 주가흐름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경우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작금의 기술진보가 고용흡수력을 떨어뜨리는데다 그나마 나쁜 일자리가 대부분이어서 밀레니얼들의 미래가 가늠되지 않는 것이다. 지난달 8·15 광화문시위를 계기로 코로나19가 다시 기승을 부리면서 취업은커녕 알바 자리마저 구하기 힘들어지면서 빚으로 주식을 단기매매해서 용돈이라도 벌자는 심리도 작용했다.
덕분에 돈을 빌려서 주식을 사는 신용거래 융자가 급격하게 늘었다. 신용융자 잔고가 금년 3월 6조4천억원에서 8월18일에는 역대최고인 16조원을 돌파했다. 최근 들어 빚투 증가속도는 5G급으로 빨라져 묻지마 주식 '빚투' 차입금이 1주일에 1조원씩 불어나고 있다. 증권사들은 코스피 예상 밴드 최상단을 2500선까지 올려 잡고 있어 향후 개미들의 주식투자 증가는 불문가지이다.
국내증시는 실물경기가 바닥인 상황에서 유동성의 힘만으로 버티는 실정인데 급등락이 심한 주식을 빚으로 매매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올해 6월말 기준 가계신용잔액은 3월말보다 25조9천억원이 불어나 가계부채 총액이 1천637조3천억원으로 사상최대이며 1분기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은 98.5%로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위험 수위(80%)를 큰 폭으로 초과했다.
그러나 정부 또한 국가부채 확대에 열중하는 등 대한민국 전체가 빚잔치 중이라 별로 주목되지 않는 인상이다. 400년 전의 튤립광풍을 떠올리면 오금이 저린다.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