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지배 독과점적 비효율 측면도
그래도 정부의 무조건 개입은 금물
특허 한시보호 사례 등 '균형' 필요
규제없애고 생태계 조성 역할 중요
![2020090301000153400005931](https://wimg.kyeongin.com/news/legacy/file/202009/2020090301000153400005931.jpg)
인터넷이나 소프트웨어 시장에서는 압도적으로 많은 고객을 확보하면 그 고객 수 자체가 경쟁력이 되므로 다른 기업이 시장을 뚫기 어렵다. 소비자로서는 주변에서 대부분 카카오톡을 쓰는데 혼자만 다른 유사 서비스를 쓸 이유가 없다. 시장지배력이 큰 애플의 마진율은 40% 가까이 된다. 제약회사가 신약 개발에 성공하면 원가가 낮아도 엄청나게 높은 가격을 책정할 수 있다. 저가에 많은 환자가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효율적이지만 기업이 그런 선택을 할 이유는 없다. 혁신적 기업이 지배하는 시장은 대체로 독과점적이어서 비효율적인 시장이다.
효율적인 혁신이 비효율적인 시장을 만든다는 주장이 얼핏 모순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혁신의 효율성은 현재 상태를 보느냐 시간의 전후를 비교해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달리 표현하면 혁신은 정태적으로 비효율적이고 동태적으로 효율적이다. 수많은 기업이 만드는 복제약이 개당 천원이라고 하자. 이런 시장에선 기업이 폭리를 취할 수 없다. 즉 효율적이다. 기존 약보다 가격이 몇 배 비싸도 효과는 수십 배인 신약이 나와 시장을 장악한다고 가정해보자. 독점 시장이어서 비효율적이지만 이전과 비교하면 세상은 더 좋아졌다.
혁신이 비효율적인 시장을 만든다는 사실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정부가 개입과 규제 여부를 고민해야 한다는 점이다. 혁신적 기업이 지배하는 시장이 비효율적이라도 정부가 무조건 개입할 필요는 없다. 정부의 규제로 시장지배력을 행사할 수 없다면 누가 비용과 위험을 감수하고 혁신에 나서겠는가? 정부가 개입하지 않아도 독점의 횡포가 심해지면 경쟁자가 출현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렇다고 독점적인 시장을 항상 방치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미국에서는 앞서 언급한 페이스북 등 빅4 기업을 분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공정위가 상위 배달앱 업체의 합병 승인 여부를 심사하고 있다. 혁신을 장려하는 것과 그에 따른 부작용을 억제하는 것은 상충하므로 균형이 필요하다. 특허제도가 대표적이다. 특허로 기술을 보호하지 않으면 혁신이 억제된다. 그러나 특허가 너무 강하면 독점의 폐해가 지속된다. 그래서 특허는 보호기간(존속기간)이 한시적이다.
4차 산업혁명을 거론하면서 정부가 혁신을 주도하거나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정부가 유망 기술과 업종을 구체적으로 판별하고 육성에 나서는 길은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예측이 맞지 않을 수도 있고, 예측이 맞더라도 정부가 지원하는 기업이 그 시장에서 승자가 된다는 법도 없다. 혁신의 결과는 시장지배적인 기업의 출현이다. 이 말은 다수의 실패자가 있게 마련이라는 점을 뜻한다. 승자가 국내기업이 된다는 보장도 없다. 정부가 할 일은 혁신을 주도하고 승자를 미리 골라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혁신을 방해하는 규제를 없애는 것이다. 거기에 보탤 것이 있다면 혁신생태계가 들어설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혁신을 지휘하기보다는 혁신적인 기업이 시장을 장악하면 그 시장에 개입할지 말지, 개입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 정부에게는 더 중요한 역할이다.
/허동훈 인천연구원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