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하고 통쾌한 발언 '사이다' 칭송에도
품거나 아우르는 데에는 도무지 쓸모없어
국민지지 얻기 위해 통합·치유의 말 써야

내가 기억하는 그의 첫 언어는 '모라토리움'이다. 파산을 의미하는 이 말을 기가 막히게 생생한 행정현장의 언어로 만들어버린 장본인이다. "판교특별회계에서 LH와 국토해양부 등에 5천200억원을 내야 하지만 현재 성남시 재정으로는 이를 단기간에 갚을 능력이 안 돼 지급유예를 선언한다." 2010년 7월12일 성남시장에 취임한 지 불과 보름도 안 된 시점에 대한민국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모라토리움을 선언했다. 3년6개월 만에 모라토리움의 성공적 종식을 선언한 이후 "대한민국은 못해도 성남은 합니다!"가 그의 캐치프레이즈가 됐다.
그의 두 번째 언어는 '구속'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혼란이 국민적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던 2016년 11월2일 자신의 SNS를 통해 "이젠 국정 난맥에 따른 자진사퇴 요구가 아니라 탄핵을 해야 할 때가 됐다.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고 구속하라"고 주장했다. 이어 21일에는 "박근혜 퇴로 보장 안된다. 퇴진 후 반드시 구속 처벌해야"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면서 계속해서 박 대통령의 구속을 강력히 촉구했다. 이를 계기로 '박근혜 구속'이 촛불광장의 구호가 됐다. 그 누구도 쉽게 입에 올리지 못했던 '구속'이라는 위험한 단어가 그를 대권주자 반열에 뛰어오르게 한 구름판이 된 것이다.
세 번째 언어는 '전쟁'이다. 내가 알기로 그는 이 위기의 단어를 가장 자주, 그리고 가장 적절한 타이밍에 쓰는 정치인이다. "오늘은 첫 번째 전투에서 졌지만 거대한 전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건 그냥 하나의 지나가는 과정일 뿐입니다. 좋은 경험을 쌓았습니다. 우리가 뭘 준비해야 하는지를 작은 전투를 통해 배웠습니다. 더 큰 제대로 된 전쟁을 준비합시다." 2017년 4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고배를 마신 뒤 패배연설을 통해 지지자들에게 한 말이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선 "전쟁이 끝났다. 병사들은 돌아가 농사 잘 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8일 도지사직을 건 첫 재판을 앞두곤 SNS에 '토건비리와의 전쟁은 현재진행형'이라는 글을 올리면서 "대한민국의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문제는 부동산 불로소득"이라고 짚었다. 신천지 교인을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던 지난 2월25일엔 도청직원들을 이끌고 과천시의 신천지 총회본부로 돌격했다. 그리곤 "지금은 전쟁상황"이라며 신천지 측에 신도 명단을 요구해 기어코 넘겨받았다.
이재명의 언어는 현장의 언어이고, 광장의 언어이며, 전장의 언어이다. 선언의 언어고, 촉구의 언어이며, 결행의 언어이다. 그의 언어는 언제나 직선이다. 에두르지 않는다. 시원하고 통쾌하고 거침이 없다. 하지만 직선은 가르고, 나누고, 구획하는 데에는 그 쓰임새가 유효하지만 품고, 아우르고, 합병하는 일에는 도무지 쓸모가 없다. 그의 언어가 때때로 낯설고, 거칠고, 사납고, 심지어 무서운, 그래서 불편하고 불안하게 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재명의 언어가 바뀌길 기대한다. 직선의 언어에 곡선의 언어가 보태지길 희망한다. 흥행하고 있는 '사이다 맛' 언어만으로는 죽어도 그 짜릿한 탄산의 쾌감을 포기할 수 없는 충성스런 고객들만 붙잡고 있게 될 뿐이다. 2002년 16대 대선을 포함한 네 차례 대선에서 진보성향의 대통령은 최고 49%의 득표율에 그쳤다. 과반을 이루지 못했다. 당내 경선까지는 몰라도 본선에서 국민 과반의 지지를 얻으려면 무엇보다 언어가 바뀌어야 한다. 통합과 포용과 위무와 치유의 언어를 써야 한다. 지금처럼 갈라지고 나눠져 진영놀음에 골똘하고 있는 암담한 현실을 고민한다면 더욱 그렇다. 대권주자 이재명 스스로 언어의 전환을 고민하기 시작해야 할 때다.
/이충환 언론학박사(경인교대 미디어리터러시연구소)·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