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휘어진 나무와 물이 낸 길 등
변화무쌍한 자연 담아낸 김건일 작가
회화·설치 넘어 향과 詩로 표현 더해
변화무쌍한 자연의 모습이 한 폭의 캔버스에 담겨 현대미술로 재탄생했다. 다음달 11일까지 파주 아트센터 화이트블럭에서 진행되는 '바람이 지나는 길' 전에서 김건일 작가는 숲에 얽힌 기억과 망각에서 비롯한 두뇌작용을 '읽는다'기 보다는 숲을 그 자체로 '보는' 것으로 유도한다.
숲의 특정 부분에 기억과 망각을 집약할 시기에는 한 화면에 여러 개의 이미지를 쌓아 숲을 좁은 프레임에 담았다. 이번 전시에서 김 작가는 바람에 휘어진 나무와 물이 낸 길 등 거시적인 숲의 풍경을 드러낸다.
작가는 캔버스에 거리를 두고 감상할수록 색감이나 붓질의 밀도감을 짚어보는 것으로부터 벗어나 비로소 숲의 온전한 풍경이 보이도록 했다.
작품 '스치는 기억, 2020'은 달리는 차창 밖, 예측 불가능하게 흘러가는 풍경을 담았다. 평소에는 지각하기 어렵던 먼 풍경이 달리는 차 안에서는 오히려 눈에 띄고, 가깝던 풍경은 알아챌 수 없이 흐려지는 것을 비유한 작업이다.
작가는 차창 밖 풍경처럼 변화무쌍한 마음을 잡으려 애쓰기보다는 이를 흘려보내며 새로운 것을 마주해보는 경험을 제안한다.
전시는 김건일 작가의 회화와 설치 작업뿐만 아니라 향, 그리고 시가 함께 한다. 작가가 바람을 통해 느낀 마음을 캔버스에 시각화한다면, 향은 숲에 부는 바람을 상상하며 후각을 자극한다. 시는 푸른 숲을 문자로 천천히 짚어 보길 시도한다.
"바람은 때로는 따스하게, 때로는 차갑게 다가와 매번 나의 다른 감각을 일깨운다"고 전하는 작가는 작품 '다시 못 올 몇 번의 그 계절, 2020'을 통해 자연스러운 숲의 풍경을 시각과 후각을 통해 표현했다.
이어 작가는 또 다양한 레이어를 쌓고 덜어내길 반복하며 기억의 왜곡이나 과장, 각색에 대한 고민을 작품에 담았다. "점을 찍고 이를 붓으로 펴 바르며 이어나간 것이 나무가 되고 숲이 됐다"고 말하는 그는 유화로 다양한 레이어를 쌓고 덜어내길 반복하며 숲을 그렸다.
작가는 이를 단순한 풍경화가 아닌 빼곡히 쌓인 기억이란 개념으로 접근했다.
작가는 "물감 면에 어떠한 형상을 드러낼 때까지 닦아내는 반복된 과정은 잊어버린 기억을 되찾아보려는 절실한 행위였다"면서 "이번 전시가 앞만 보고 달려온 관람객들에게 조금이나마 일상을 느린 시점에서 되새겨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종찬기자 chan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