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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미국 방문 중에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 용사들과, 알링턴 국립묘지의 월튼 워커 장군 묘비에 큰절을 올렸다. 김 대표는 한국전쟁 때 대한민국 수호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생존 미 참전용사와, 미군 사령관에 대해 한국식으로 극진한 예의를 표한 것이다. 야당과 진보인사들의 생각은 달랐다. 당시의 진중권은 "세계 외교사에서 다시 보기 힘든 해괴한 장면"이라며 집권여당 대표의 과공(過恭)을 비판했다. 김무성을 향한 야당 비판의 핵심은 '대미 사대주의'였다.

2년 뒤엔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방문이 문제가 됐다. 베이징대학 연설에서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에 비유하면서 "중국몽이 아시아 모두, 전 인류와 함께 꾸는 꿈이 되길 바란다"며 "한국도 작은 나라지만 그 꿈에 함께 할 것"이라고 했다. 이번에도 야당이 발끈했다. 시진핑의 중국몽을 극찬한 중화 사대주의 외교라 폄하했다. 스스로 소국을 자처한 대목에 반발하는 여론이 작지 않았다. 여당 대표와 대통령의 대미, 대중외교가 '과공' 시비로 본질이 흐려진 장면들이다.

일반 시민사회에서 지나친 공손, 과공이 문제되는 경우는 드물다. 처세로는 무례보다 과공이 백번 낫다. 하지만 공인의 과공은 종종 문제가 된다. 우선 국가, 국민, 시민에게 집단적 굴욕감을 줄 수 있다. 여당 대표와 대통령의 대미, 대중 외교가 '과공' 시비에 휘말린 이유다. '트럼프의 푸들'이라는 아베 같은 지도자는 우리 국민 정서에 안 맞는다. 공인의 과공은 직무의 불신을 초래할 수도 있다. 만일 국회의장이, 대법원장이 대통령에게 허리 숙여 인사한다면, 국민은 3권 분립의 적신호로 여길 것이다.

지난 11일 문 대통령의 등을 향한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의 90도 폴더인사가 화제가 됐다. 자신의 임명장을 들고 와 질병관리청 출범을 격려해준 대통령에 대한 예의였을 것이다. 지난 7월엔 국회에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에게도 90도 폴더인사를 했더랬다. 대통령과 야당 원내대표에게 90도 인사를 하는 방역사령관의 모습이 '방역의 정치 종속'으로 비칠까 봐 걱정이다. 정 청장은 초대 독립 방역기관장으로서, 방역을 방해하는 정치적 간섭과 결정들을 거부하고 반대해야 할 입장이다. 정 청장의 90도 폴더인사가 방역 소신과는 상관없는, 그저 인품의 발로일 것으로 믿는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