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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의 영웅 오이디푸스는 신이 정한 운명의 거미줄에서 꼼짝 못하는 인간을 상징한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해 자녀를 낳은 진실이 밝혀지면서, 아내이자 어머니는 자결하고 자신은 두 눈을 찔러 실명한 뒤 온 세상 사람들에게 모욕받는 유랑 끝에 숨진다. 납득하기 힘든 인간사를 신의 섭리에 맡겨 버린 고대 그리스인들의 인생관, 그 끝을 보여주는 비극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 비극에 착안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이론적 용어를 창안했다. 어린 아들은 유아기에 최초의 이성인 어머니를 독차지하려고, 아버지를 경쟁 상대로 여겨 콤플렉스를 느끼며 증오하는 심리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아들들은 아버지를 향한 증오를 선망으로 바꾸고, 아버지를 자신과 동일시하며 성장하면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한다고 봤다.

프로이트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이 세상 아들들은 아버지를 미워하면서도 닮는다. '부전자전', '피는 못 속인다'는 부자관계에 대한 직관적인 속설이 이를 증명한다. 고대 그리스를 통일한 마케도니아 필리포스 2세의 아들 알렉산드로스는 아버지의 군대로 세계를 정복했다. 이성계는 조선을 창업했고, 아들 이방원은 수성에 성공해 조선 500년의 반석을 놓았다. '호부(虎父) 밑에 견자(犬子) 없다'의 사례다.

하지만 오이디푸스가 보여주듯 인간사가 정석대로 전개될 리 없다. 호부 없이 개천에서 용이 된 인물이 수두룩하고, 호부를 두고도 견자에 그치는 자식들도 허다하다. 호부에 호자, 견부에 견자가 정석인 세상이라면 평등과 공정과 정의가 없는 전제세습의 나라일 것이다.

그래도 아쉽다. 더불어민주당에서 제명당한 김홍걸 의원 말이다. 아버지 김대중이 누군가. 대한민국 민주화의 상징이자 유일한 노벨상 수상자다. 이런 김대중을 아버지로 둔 김 의원이 졸렬하게 부동산투기 문제로 '호부견자'라는 조롱을 받으며 소명조차 못한 채 당에서 쫓겨났다. 다름아닌 아버지가 창업한 당이다. 견자라는 조롱은 자신이 감당할 치욕이지만, 아버지를 견자를 둔 호부로 만든 불효는 어떻게 감당하려는지 궁금하다. 국민에게 정중하게 사과하고 금배지를 반납한다면, 그나마 호부 '김대중'의 명예에 합당한 처신일 듯한 데,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