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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오전 11시 16분께 인천 미추홀구의 한 빌라에서 불이 나 초등생 형제가 크게 다쳤다. 녹아버린 잠금 장치가 당시 대피하기 어려웠던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2020.9.14 /박현주기자 phj@kyeongin.com

2년전 학교서 '아동센터 입소' 권유
어머니, 서류 접수 하지않아 무산
3차례 방치 보고… 경찰 수사의뢰
화재 한달전 '보호분리 청구' 기각
전문가들 "사회안전망 역할 개선을"


지난 14일 점심시간 무렵 인천 미추홀구의 한 빌라 2층에서 라면을 끓이다 화재로 다친 A(10)군과 B(8)군 형제는 일주일째인 20일 오후까지 의식이 회복되지 않고 있다.

평소 형제를 지켜봤던 이웃들은 '어머니의 방임이 우려된다'고 수차례에 걸쳐 신고했으나 아이들의 참사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아동보호 관련 기관들이 소극적으로 대처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관련 기관 사이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던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아동보호 제도 범위'를 좁게 해석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사회안전을 담당하는 기관의 역할과 이들의 연계 시스템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과 개선이 요구된다.


[포토]출입통제된 라면 형제 화재 현장
초등학생 형제가 라면을 끓여 먹다 화재가 발생한 인천시 미추홀구 형제의 집이 20일 오전 출입이 통제되어있다. 2020.9.20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 제 역할 못한 사회안전망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를 피해자와 가해자를 구분해 누군가의 책임을 묻기보다는 사회 안전망이 제 역할을 못해 벌어진 참극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선아 숙명여대 아동복지학부 교수는 "아동을 지원하는 각 기관의 대처가 미흡해 발생한 사안"이라며 "아동 권리 협약은 아동이 최적의 환경에서 양육될 수 있도록 요구할 수 있다고 명시하는 데 이를 위해선 사회적 장치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했다.

장희정 (사)한부모가족한가지회 대표는 "'내가 낳은 아이를 책임지겠다'고 한부모를 택한 어머니를 추궁하기 전에, 일과 양육을 병행하기 어려운 가구에 한해 '아이는 국가가 키운다'는 명제가 얼마나 작동했는지 들여다봐야 한다"며 "가구별 환경을 세밀히 분석해 일률적이고 통합적인 돌봄 정책에서 벗어나 촘촘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사고를 막을 기회는 6차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미추홀구는 지난 2018년 5월 형 A군이 다니는 초등학교로부터 "보육 기관을 다닌 적이 없어 또래 관계 형성에 어려움이 있다"고 전달받고 어머니 C씨에게 지역아동센터에 보낼 것을 권유했다.

지역아동센터는 기초생활수급자와 한부모 가구에 속하는 아동에게 급식·놀이·보육·정서적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또래와 어울릴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C씨는 바쁘다는 이유로 지역아동센터 입소를 위한 서류를 제출하지 않았다.


[포토]검게 그을린 라면 형제 화재비원진 빌라 현장
초등생 형제가 라면을 끓여 먹다 화재가 발생한 인천시 미추홀구 빌라 천장이 20일 오전 검게 그을려있다. 2020.9.20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 미흡했던 기관들의 대처

이웃들은 2018년부터 올해까지 3차례에 걸쳐 아이들이 방치되고 있다고 신고했다. 2018년 9월 이 같은 신고가 처음 접수됐다. 인천시아동보호전문기관은 가정 내 청소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 개선할 것을 요청했다.

취약계층 아동에게 맞춤형 통합서비스를 제공하는 미추홀구 드림스타트는 모자를 상담했다. 1년 뒤인 2019년 9월 두 번째 신고가 접수됐고, 기관은 '똑같은' 시정조치를 했다. 지난 5월 세 번째 신고가 접수되자 기관은 경찰 수사를 의뢰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형제가 어머니와 분리돼야 한다고 보고 법원에 분리·보호하기 위한 명령을 요청했다. 미추홀구 드림스타트는 모자의 방문 상담도 원활하게 이뤄졌기 때문에 문제점을 찾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아동보호전문기관은 다르게 판단했던 만큼 두 기관의 입장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모자를 제도 내에서 가장 가까이 지켜봤던 기관들조차 '엇박자'를 내며 긴밀한 협의가 이뤄지지 않았던 셈이다.

화재 발생 한 달 전인 지난달 인천가정법원은 분리·보호 명령 청구를 기각했고 형제는 단둘이 빌라에 남아있게 됐다. 학교는 지난 8월 원격 비대면 수업에 대비해 '가정통신문'을 통해 긴급돌봄을 권유했다고 한다.

늦은 오후까지 학교에서 급식을 먹고 공부할 수 있는 긴급돌봄 제도는 A군 형제처럼 돌봄이 '꼭' 필요한 가정 내 학생이 우선순위였다. 하지만 '무직이라 아이들을 돌보겠다'는 어머니 답변에 따라 아이들은 집에 머물다 사고를 당했다.


[포토]미추홀구 라면 형제 화재의 흔적
초등생 형제가 라면을 끓여 먹다 화재가 발생한 인천시 미추홀구 한 빌라 외벽이 20일 오전 가림막으로 가려져 있다. 2020.9.20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 화재 피해 왜 컸나

형제가 라면을 끓이려다 낸 불은 10분여 만에 꺼졌으나, 가연성 가스 폭발 등으로 인해 집에 있던 형제에게 피해가 컸던 것으로 확인됐다.

화재는 신고가 접수된 지 약 13분 만에 진화됐으나, 30㎡ 규모 빌라의 방 2개와 거실 겸 부엌을 상당 부분 태웠다. 불은 부엌에서 시작됐는데 당시 가스 밸브가 열려 있었고 가스레인지 1구의 회전식 손잡이가 '점화' 상태로 돌려져 있었다는 게 소방당국 설명이다.

불은 가스레인지 위 찬장으로 번진 뒤 가연성 가스가 확산해 퍼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가스레인지에서 불과 2m 옆에 현관문이 있었던 점을 보면, 갑작스럽게 발생한 불에 형제가 쉽게 대피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소방당국은 파악했다. 당시 출입문 잠금장치가 녹았을 정도로 불이 컸다.

/박현주기자 ph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