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현동 화재 현장
초등학생 형제 단둘이 집에서 라면을 끓이던 중 불이 나 크게 다친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진 16일 오전 인천시 미추홀구 화재현장에 불에 타다만 집기류와 학용품이 놓여져 있다. 이들 형제는 이날 오후까지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는 위중한 상태로 알려졌다. 2020.9.16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형제 어머니 '학교 긴급돌봄' 거부

기관들, 조치 거부하면 강제력 없어

아동보호 명령 720건중 퇴거 '0건'
"적극적 개입 가능한 法 만들어야"


단둘이 끼니를 해결하려다 화재로 중화상을 입은 인천 미추홀구 초등학생 형제(9월 25일자 4면 보도='초등생 형제 화재' 사회적 책임 목소리)는 돌봄지원 등을 받을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친권자인 어머니의 거부로 사각지대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어머니가 아이들을 방치한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방임을 포함한 학대 피해 아동을 친권자와 즉시 분리해 보호하는 등의 '친권 제재' 강화의 입법화를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지난 14일 점심쯤 집에서 난 화재로 크게 다친 초등생 형제는 사고 이전에도 지자체로부터 지역아동센터에 다닐 것을 권유받았으나 어머니는 거부했다. 형제의 어머니는 비대면 수업이 진행될 때도 '아이들을 돌보겠다'며 학교의 긴급돌봄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친권자인 어머니가 여러 조치를 거부해도 관련 기관은 강제력을 동원할 수 없었다. 법원은 열악한 환경에 있는 이들 형제를 집에서 분리해야 한다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청구를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원가정 우선 보호 원칙'이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친권자의 권한이 지나치게 강하고, 남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다. 친권은 민법에서 규정한다. 민법에 의해 친권자는 자녀를 보호하고 교양할 권리·의무가 있다.
다만, 자녀의 복리를 현저히 해치거나 해칠 우려가 있을 때 법원은 친권의 상실이나 일시 정지를 선고할 수 있다. 아동복지법에도 친권 상실 청구 관련 조항이 있다.

하지만 민법과 아동복지법 등이 규정한 친권 제재 근거는 너무 모호하다는 게 법조계 지적이다.

이와 관련, 2014년 제정된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검사는 '중상해'와 '상습범'의 경우 법원에 친권 상실을 청구할 수 있게 됐다. 해당 법률 개정으로 다음 달부터는 지자체장도 친권 상실 청구를 검사에게 요청할 수 있다. 아동학대 가해자의 77%가 부모인 현실을 반영한 제도다.

그러나 실제로 법원 등을 통해 친권을 제재한 경우는 드물다. 인천 형제들처럼 외부기관이 부모의 방임 등 학대 정황을 인지했어도, 부모가 친권을 행사하면서 개입하지 못하는 사례가 지속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는 게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2018년 발생한 아동학대 사례 2만4천604건인데, 친권 제재·회복 선고는 103건에 불과했다. 2019년 사법연감을 보면, 2018년 법원의 피해 아동 보호 명령 720건 가운데 친권자와 아동을 분리하는 '1호 격리(퇴거)'는 단 한 건도 없었다.

법률상 모호한 친권 제재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강화해야 인천 형제 참변 같은 사각지대를 줄일 수 있다는 게 법조계 주장이다.

이미 국회에는 친권 제한 청구권자의 범위를 확대하는 법률 개정안, 친권 일시 정지 2년 제한을 폐지하는 법률 개정안, 피해 아동 상담·치료 결과에 따라 원 가정 복귀를 결정하는 법률 개정안 등이 발의된 상태다.

최근 인천지역 국회의원들은 인천 초등생 형제 참변을 계기로 학대 위험 때 아동을 보호자로부터 즉시 분리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이른바 '라면형제법'(아동복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공동 발의하기도 했다.

한 법조계 인사는 "학대가 발생했거나 의심될 때 친권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법률체계가 만들어져야 제도적 개선이 뒤따라올 수 있다"며 "국회 계류 중인 관련 법안은 물론 라면형제법 등 추가적인 법안도 시급히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