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가요 트로트는 일제 강점기 엔카(일본 음악)의 영향을 받았다. 뽕짝이라 불리기도 한다. 4/4 박자를 베이스로, '쿵짝 쿵짝' 리듬이 이어진다. 전통 가요라지만 그리 오랜 역사는 아닌 것이다.
추석 연휴, 전국이 트로트로 뜨거웠다. 연휴 첫날 KBS2 TV 채널로 방영된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는 전국 시청률 29%를 기록했다. 고향인 부산에서는 37%를 넘기도 했다. 후속작 '나훈아 스페셜' 역시 시청률 18%를 넘어섰다고 한다.
나훈아는 2시간30분 동안 스물아홉 곡을 쏟아냈다. 민소매 셔츠에 찢어진 청바지 차림으로 '청춘을 돌려다오'를 열창했다. 코로나19 때문에 비대면으로 진행됐으나 무대는 더 풍성했고, 스케일은 웅장했다. 거대한 배와 기차, 하늘을 날고 바다로 빠지는 역동적인 연출로 관객이 없는 허전함을 채웠다.
만 73세 나훈아는 무대 위에서 옷을 갈아입으며 청춘의 몸을 보여줬다. 나이를 잊은 가창력과 쇼맨십, 화려한 무대 연출에 중·노년층뿐 아니라 청년층도 환호했다. '고향 역', '홍시', '사랑', '무시로', '18세 순이', '잡초', '영영' 등 히트곡에 신곡 '테스형'까지. 지루할 틈이 없다.
공연 중간 툭툭 던진 메시지가 국민 마음을 흔들었다. "국민 때문에 목숨 걸었다는 왕이나 대통령을 본 적 없다"며 "국민이 힘이 있으면 위정자들이 생길 수 없다"고 했다. "KBS는 국민의 소리를 듣고 국민을 위한 방송이지요? 두고 보세요. KBS는 앞으로 거듭날 겁니다"라고 했다. 가황(歌皇)다운 묵직한 울림을 줬다는 반응들이다.
감동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 정치권은 또 찬물을 끼얹는다. 야권은 '현 정부의 실정을 비판했다'고 해석했다. 여권은 아전인수격이라며 '오독 하지 마라'고 되받는다.
나훈아는 50년 넘게 한우물만 판 장인이다. 한때 돈은 없었을지언정 가오는 '단디' 챙겼다. 삼성 이건희 회장이 불러도 가지 않았고, 평양행 비행기를 타지 않았다. 외길 가인(歌人)이기에 한 소절에 감흥이 일고, 말 한마디에 국민이 움직이는 거다.
그는 출연료도 한 푼 받지 않았다. 온 국민과 함께 힘을 내고 희망을 전하는 취지라고 한다. 코로나19에 지치고, 정치권에 실망한 국민들이 한동안은 '부산 싸나이'를 놔줄 것 같지 않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