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장관 아들사건 편들기·공세적 태도
文정부 '기회 평등·공정·정의' 공허한 구호
분명한 소명의식·신념… 정치에 대한 갈구
'나훈아 평범한 말'에 시민들 주목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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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객원논설위원
가수 나훈아씨가 추석 특집 공연에서 남긴 메시지는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이 그저 한껏 멋을 부리려고 한 말이라고 하기에는 짙은 여운을 남겼다. 그가 공연 출연료를 받지 않았다는 점과 KBS에 출연하면서도 그 방송에 하는 쓴소리라고 해석될 수 있는 말, "삶의 모가지를 잡고 끌고 가지 않으면 끌려간다" 등의 메시지는 가슴을 울리는 말들이다. 그의 "내가 살아오는 동안에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람을 한 사람도 본 적이 없다"는 말에도 한국정치의 구태와 퇴행을 성찰하게 하는 감동과 영감이 묻어 나왔다. 일부 정치인들은 "국민이 힘이 있으면, 위정자(僞政者)가 생길 수 없다"는 말에도 아전인수격 해석과 함께 그에 대한 예찬으로 숟가락을 얹기도 했다. 그의 말에 대한 과도한 유추나 해석이 오히려 그의 진의를 왜곡할 수 있겠지만 추미애 장관 아들 휴가 특혜의혹사건과 북한에 의한 공무원 피살 사건 등에서 여권 정치인들이 보여 준 발언과 강퍅한 행태는 나훈아와 묘한 대조를 이룬다.

검찰이 추 장관과 아들 서모씨, 최모 전 보좌관에게 '혐의없음'으로 사건을 종결했지만 사건을 둘러싼 파장은 가라앉지 않는다. 추미애 장관 아들 관련 사건은 지난해 조국 사태와 맞물리면서 사회정치적으로 정의와 공정의 문제를 상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추 장관 측이 받아든 법률적 면죄부와는 별개로 여야의 논란은 국정감사에서 쟁점이 될 게 뻔하다. 추 장관은 인사청문회와 국회에서 아들 휴가와 관련하여 '어떠한 지시나 관여를 한 적이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여러 번에 걸쳐 했고, 검찰 수사 결과 보좌관에게 지역대 지원장교의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아들에게 연락하라는 말과 함께 본인도 보고를 받았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전화번호를 알려준 게 지시가 아니라는 추 장관의 말은 상식 영역에서 판단하면 될 문제다. 이번 사건에서 추 장관이 애초에 사실을 인정하고 겸손한 자세로 임했다면 사안이 정치적 쟁점으로 비화하진 않았을 것이라는 추론이 지배적이었다.

추 장관은 자신의 거짓에 대해서 사과와 해명을 하지 않고, 오히려 문제를 제기한 측에 공세적이다. 야당이 국정감사에서 다시 이 문제를 쟁점화하고 특검 도입을 주장한들 경로 의존성에 비추어 볼 때 결국 이 사안은 정치적 공방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여야는 이 사건을 정치공학에서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권은 이 사건의 승패를 정권의 레임덕 여부까지 연결시키고, 야권은 반대 논리로 여권을 밀어붙이려 한다. 사건의 실체적 진실과 정의, 공정은 한낱 이들의 입장을 수호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

그러나 이 사건을 대하는 추 장관의 태도(attitude)마저 묻히는 것은 아니다. 정치는 사건이나 현상을 보는 태도나 자세에서 출발한다. 태도는 인식에 결정적 영향을 주고 민의에 접근할 수 있는 중대한 시금석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안에서 민주당 일부 의원들의 과도한 편들기나 무리한 비유 등과 추 장관의 공세적 태도는 시민 일반의 인식과는 괴리가 있다. 문재인 정부가 내세웠던 정의와 공정, '기회의 평등과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는 공허한 구호가 되었다.

현실주의와 이상주의 사이 어디엔가 위치하는 것이 정치지만 결국 정치를 움직이는 현실동력은 마키아벨리의 권력정치이다. 그러나 1인1표의 민주주의 원리는 최종적으로 유권자의 마음을 사서 움직이게 하는 행위에 기반한다. 가슴을 감동시키지 못하는 정치는 직업정치인의 탐욕만을 충족시키는 매표행위와 중우정치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정치인은 왜 정치를 하는지 분명한 소명의식이 있어야 한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 라스웰의 저서 '정치학: 누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획득하는가'에 언급된 정치에 대한 최소한의 성찰은 있어야 한다. 소명의식과 신념이 부재한 정치가 어떠한 결과로 귀결되는지는 한국정치가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정의와 당당함에서 멋도 나오고 낭만도 나온다. 이러한 정치에 대한 갈구가 가수 나훈아씨의 평범한 말에 시민들이 주목하는 이유이다. 당리당략을 위해서는 대상을 가리지 않는 몰염치는 나훈아씨의 메시지에 대한 아전인수식 해석으로 또 다시 도졌다. 언제 한국정치는 품격을 찾을 수 있을까.

/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