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년대 초, 바둑 기사 이창호 9단은 국내·외 기전에서 연간 90승을 달성했다. 스승인 조훈현 9단을 넘어선 청출어람이다. 승패의 갈림길에도 표정 변화가 없어 돌부처란 별명을 얻었다. 반집 승부를 정확히 가려내 신산(神算)이라 불렸다. 1975년생인 그는 1994년 군 입대 대상이었다. 국보급 기사가 국위를 선양하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국민 청원이 시작됐다. 치열한 찬반 공방 끝에 병역특례대상이 돼 공익근무를 했다. 정부가 바둑을 체육특기자 종목에 넣는 묘책을 낸 것이다.
방탄소년단(BTS) 단원들의 병역면제 찬반 논란이 뜨겁다. 지난달 신곡 '다이너마이트(Dynamite)'가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오르면서다. K-팝의 주역인 BTS에 특례를 적용해야 한다는 게 찬성론자들 주장이다. 반면 형평과 공정에 어긋난다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정치권은 또 오지랖이다. 여당 의원은 "신성한 국방의 의무는 국민에게 주어진 사명이지만, 모두가 반드시 총을 들어야만 하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국민이 보기에 편치 못하고 본인도 원하는 일이 아니다"라며 선을 긋는다.
대한민국 국민은 병역에 민감하다. 병역 기피자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 사회에서 매장되기 때문이다. 도박과 음주운전, 심지어 마약을 한 연예인이 화려하게 부활하는 경우가 있다. 이들에겐 세월이 약이다. 하지만 병역은 다르다.
가수 유승준은 2002년 미국 시민권 취득을 통한 병역 기피 의혹으로 국내 입국을 금지당하고 추방됐다. 이 사건으로 그는 슈퍼스타에서 조국을 배신한 자, 국민을 속인 사기꾼으로 낙인찍혔다. 법정소송을 통해 입국의 길이 열렸으나 18년이 지난 현재까지 타국을 떠돌고 있다. 국민 정서를 우려한 외교 당국이 입국비자를 발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병역 면제 논란은 고무줄 잣대에 있다. 1973년 시작된 병역특례제도는 수차례 바뀌고 땜질 돼 누더기가 됐다는 비판을 받는다. 운동선수와 순수예술인에 대한 특례규정만 있을 뿐 대중문화예술인은 제외돼 있다. BTS 단원들에 대한 특례대상 적용이 어려운 이유다.
BTS라 해도 특혜를 줘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무작정 총을 들게 해야 공정한 것인가. 이름 모를 국악대회 수상자는 특례 대상인데 빌보드 1위는 안 된다는 현실이 답답하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