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공산주의 독재체제의 특징으로 사회주의 대가정론이 있다. 지도자를 아버지, 당을 어머니, 인민을 자녀로 여겨 나라 전체를 하나의 가정이라는 유기적 결합체로 결속시킨다. 가정에서 아버지인 수령의 말씀은 신성하며, 어머니인 당을 지켜야 하고, 자녀인 인민들은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 가정의 질서를 깨는 반동은 허용되지 않는다. 유교적 체취가 물씬한 사회주의 대가정론이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세습의 요람인 셈이니, 북한 공산당의 가부장적 유교문화 차용이 절묘하다.
지난 10일 0시 평양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 경축 열병식. '당과 국가, 무력의 최고영도자 김정은 동지'는 "건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무병무탈해주셔서 고맙습니다"라며 눈물을 쏟았다. "노력과 정성이 부족하여 우리 인민들이 생활상 어려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사죄도 했다. 악성비루스와 자연재해로 고생한 인민의 건강을 걱정하고, 경제적 어려움을 인정하고 사과하며 눈물을 쏟는 아버지의 모습에 열병식에 도열한 자녀들, 당간부·군인·평양시민들도 주룩주룩 눈물을 흘렸다.
눈물로 자녀들과 일체가 된 김 위원장은 이내 환한 미소로 신무기 열병식을 박수로 맞는다. 공개된 신무기들의 위용은 대단했다. 2017년 6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성공으로 핵무장국 지위를 굳힌 북한이다. 이번 열병식에서 핵탄두를 탑재한 발사체가 주목받았다. ICBM은 2017년 성공한 화성15형 보다 대형화됐고, SLBM(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북극성-4A도 등장했다. 핵탄두 여러개를 실어 미국 본토까지 타격할 수 있는 무기들이다. 아버지 김 위원장은 "그 어떤 군사적 위협도 충분히 통제 관리할 수 있는 억제력을 갖추었다"고 선언했고, 자녀들은 열광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연설에서 "사랑하는 남녘의 동포"에게도 따뜻한 마음을 보냈다. 지금 남녘 동포들은 북한 해군이 사살한 김 위원장의 '사랑하는 남녘 동포' 시신을 찾아 바다를 헤매고 있다. 이제 남녘동포들은 김 위원장의 연설에서 평화의 메시지를 읽는 무리와, 열병식의 ICBM과 SLBM에서 공포심을 느끼는 무리로 나뉘어 소란해질 것이다.
눈물만으로 주민을 하나로 결집시키는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전 세계로 쏘아 보낼 수 있는 다탄두 핵미사일까지 가졌다. 북한군에 사살된 국민을 두고 월북 논란으로 갈라지는 모래알 정치와 민심으로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