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사랑하는 남녘의 동포들'
인민들에 고맙고 미안하다는 표현
북한, 수해·코로나·경제난 '삼중고'
뭔가 절실히 원한다는걸 짐작케 해
측은지심 솟는것은 어찌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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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며칠 전 북한에서는 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열병식이 열렸다. 자정부터 시작된 이 심야의 열병식은 북한의 노동당 창건 75주년을 기념하는 것이라고 한다. 10월10일은 북한 최대의 명절 가운데 하나다. 이상한 일이지만 말이다.

필자는 하던 일을 멈추고 이 굉장한 열병식을 보고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 광경은 확실히 과거의 틀에 박힌 군중행사와는 다른 면이 있었고 북한 문제에 관하여 여러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본 행사가 시작되기 전에 북한의 중앙방송은 한밤의 평양 전경을 카메라를 천천히 옮겨 가며 충분히 보여주었다. 카메라에 비친 평양의 고층 건물들과 널찍한 거리는 우리가 보아오던 평양과는 많이도 달랐다. 비록 건물 층층이 불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사회주의' 체제답게 빈틈없이 구획된 엄숙하고도 장엄한 도시 구성을 갖추고 있었다.

행사를 기다리는 병사들과 인민들의 엄숙한 모습을 몽타주식으로 전달하는 방식은 열병식 행사를 일층 장엄하고도 엄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그 방식은 마치 일본의 NHK가 일본 전국 각 절의 신정(新正) 타종을 카메라를 옮겨가며 비추어 주는 것과도 같았다. NHK가 그런 방식으로 일본이 하나의 불국토임을 보여주고자 하듯이 이 열병식은 북한 인민들이 하나임을 보여주고자 했다.

한껏 연출된 숭고미를 배경으로 드디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무대' 위에 모습을 나타냈다. 사회주의 공화국의 수반임을 상징하는 인민복을 입고 다니던 그의 회색 싱글 정장 차림은 그가 스위스 유학파 출신임을 새삼 생각하게 했다. 그의 좌우에 늘어선 다른 고위인사들도 군인들을 제외하면 모두 검은색 양복 차림으로 북한의 분위기를 사뭇 달라 보이게 했다.

충격적인 것은 그의 연설 내용이다. 무엇보다 그는 연설 중에 한국인들을 향해 "사랑하는 남녘의 동포들에게도 따듯한 이 마음을 정히 보낸다"라고도 했고, "북과 남이 다시 두 손을 마주 잡는 날이 찾아오기를 기원한다"라고도 했다. 방송 중계 직후에 한 시사뉴스 토론자는 고 김대중 대통령이 연설 때마다 항상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이라고 하셨던 것을 떠올리기도 했다.

사랑한다는 말은 어떤 사람의 마음도 움직이게 하는 힘을 갖는 법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지금 필자는 이 말을 비난의 뜻으로 사용하고 있지 않다. 사실 우리는 북한의 지도자들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 대신 그네들 아나운서의 적대감 서린 거친 목소리를 듣는데 익숙하지 않았던가. 바로 얼마 전만 해도 해양수산부 소속의 한 공무원이 무슨 이유인지 북쪽으로 넘어갔다가 총격을 받아 사망하고 시신까지 불태워지는 일이 발생했었다. 그래도 북한 지도자가 진지한 어투로 "사랑하는 남녘의 동포들"이라고 하는 데는 그런 참혹한 사건을 접했던 때와는 또 다른 감회가 생겨남을 다 막을 수 없다.

놀라운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그는 사상 최대의 수해를 당한 북한 인민들을 향해 고맙다는, 미안하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자신을 한껏 낮추는 어법은 우리가 아는 북한의 지도자들로서는 결코 익숙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북한은 주체사상이라는 것을 금과옥조로 삼고 있지만, 역사의 주체는 인민대중이라 하면서도 수령은 그 인민대중의 뇌수라 하니, 바로 여기에 주체사상의 전체주의 이념으로서의 '독소'가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이 지도자는 그 '팔다리' 인민을 높이 떠받드는 연출을 통하여 이 사상의 약점을 상당한 정도로 가려 놓은 것이다.

필자는 어느 곳에서든 정치란 상당 부분 연출에 지나지 않는 면이 있다고 믿는다. 다만 새롭게 연출된 이 심야의 열병식은 지금 북한이 수해와 코로나19, 경제난의 극심한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음을, 그들이 뭔가 절실히 원하는 것이 있음을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비록 독재 체제, 전체주의 국가이지만 측은지심이 솟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어쩌랴. 같은 단군의 자손들인 것을. 우리 또한 북한 문제를 놓고 너무 싸우지만 말고 현명한 타협책을 강구해야 할 때다. 평화도 살리고 그 사회의 민주화도 앞당길 수 있는.

/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