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경인일보엔 코피노의 양육비를 대신 받아 전달해주는 '열혈 자원봉사자' 구본창씨 인터뷰가 실렸다.(10월14일자 12면 인터뷰 '공감'=[인터뷰… 공감]법정에 선 '배드파더스' 열혈 자원봉사자 구본창씨) 코피노는 한국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이다. 많은 코피노들이 양육 책임을 외면하고 잠적한 한국인 아버지들 때문에 편모 슬하에서 생고생을 한다. 양국 간의 외교문제로 비화했을 정도다. 작정하고 숨은 아버지들이니 밀린 양육비를 호락호락 줄 리 없다. 구씨가 코피노 아버지 신상 공개 사이트를 개설한 이유다.
'배드 파더스'는 양육비를 안 주는 무책임한 부모의 신상을 공개하는 인터넷 사이트로 2018년 개설됐다. 구씨는 익명의 운영자들을 대신해 이 사이트의 대외창구를 맡고 있다. 현재 양육비를 거부하는 아빠 260여명, 엄마 36명, 코피노 아빠 10여명의 신상이 공개돼있다. 모두 법원의 양육비 지급 판결을 이행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은 신상공개가 두려워 밀렸던 양육비를 서둘러 지급하는 사례가 많은 모양이다.
하지만 익명의 사이트 운영자 대신 공개활동을 마다 않는 구씨는 끊임없이 소송위기에 시달린다. 사실이나 허위사실을 적시한 명예훼손을 처벌하는 형법 307조 때문이다. 사실을 말하고 알려도 명예훼손이라는 이 형법 조항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독소조항이라는 비판과 온라인상 명예훼손이 늘어나는 추세를 감안해 유지돼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선다. 헌법재판소엔 매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헌법소원심판이 청구될 정도로 법조계의 핫 이슈다.
지난 8일 구씨 등 5인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이들 중엔 병원비리를 보도한 기자도 있다. 공공의 이익을 실현할 때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처벌할 수 없도록 한 형법 310조에도 불구하고, 해당 병원은 기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모양이다. 대표적인 '전략적 봉쇄소송'이다. 보도의 사실 여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명예훼손 소송으로 기자를 압박하고 지치게 하려는 의도가 역력하다.
구씨의 사이버명예훼손 혐의에 대한 항소심 재판부는 헌재의 사실적시 명예훼손 위헌 심판 뒤로 재판을 미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사실적시'와 '명예훼손'의 연결점이 모호하다. 범법과 부정과 비리를 저지른 자들의 명예가 명예인지도 의문이다. 헌재의 심판이 주목된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