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명목 폭력행사 비합리적
자기생각만 옳다는 이기적 욕심뿐
일방적인 강요 지나친 소유욕으로
심하게 화낸다면 자신 돌이켜보고
상대하기전 마음부터 바로 잡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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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40대 가장의 사연입니다. 1남 2녀의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두 누이에게 부러움을 샀습니다. 단지 아들이라는 이유로 아버지로부터 편애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항상 하나뿐인 아들을 두고 "집안의 대들보", "가문을 책임질 사람"이라며 사교육은 물론 밥상에서조차 차별해서 잘해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아버지가 무서웠습니다. 아버지는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지만 "남자가 이 것도 못하느냐", "친척들 볼 낯이 없다"며 비난을 일삼았고,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시엔 심하게 체벌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그런 아버지가 두려웠고, 자신만 특별대우를 받는 것도 싫었습니다. 그래서 성년이 되어 군대에 가게 되었을 땐, 단지 아버지와 떨어져 살 수 있다는 이유로 해방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남들은 다들 괴롭다는 군대생활이 그에겐 오히려 휴식과도 같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결혼을 했고, 분가를 하면서 비로소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고서는 '나는 아버지처럼 자식을 억압하는 부모로 살지 않겠노라'고 굳게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명절날 부모님 댁에서 차례를 지내던 차에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아버지가 어린 손자에게 절 하나 제대로 못하느냐며 손찌검을 하려 들었던 것입니다. 평생을 아버지에게 억눌려오던 아들은 그 순간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몰라도 제 자식에겐 함부로 대하지 마세요!" 난생 처음 아버지에게 화를 낸 아들은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그 길로 문을 박차고 나왔습니다. 다시는 본가에 오지 않겠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전한 채 말입니다. 그는 지금 앞으로 어떻게 아버지를 대해야 할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가부장적 문화가 잔존한 한국의 가정에서 흔히 있을 법한 일이라 간과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가정 안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심각하게 다뤄야 합니다. 어느 경우에서든 폭력은 훈육이 될 수 없습니다. 가장, 즉 가해자의 자기중심적인 아집일뿐더러, 나아가 인격 형성에 큰 장애를 줄 뿐입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한다며, 혹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태도로 아무 일도 아닌 듯 덮고 넘어가서는 오히려 문제를 더 키우게 됩니다. 한 번 발생한 폭력은 대부분 습관으로 고착되어 더 큰 상처를 주기 때문입니다.

가정폭력의 해결책은 첫 번째가 '격리'입니다. 그다음 가해자의 치료가 따라야 합니다. 만일 가해자가 치료를 거부하면 격리는 장기화할 수밖에 없는데, 때로는 격리의 장기화 자체가 치료에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가해자에게 종교가 있다면, 가족이 함께 성직자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습니다. 폭력 가해자의 상당수가 남의 말을 잘 안 듣지만, 믿는 종교의 성직자의 말은 곧잘 듣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이는 그저 자기 생각만이 옳다는 이기적 욕심의 결과일 뿐입니다. 자기 생각만이 절대 진리인 사람에게 자녀는 소유물에 불과합니다. 내 소유물 중 최고인 자식이 자기 말을 안 들으니 용서가 되질 않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결국 분노를 참지 못해 폭력까지 행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자주는 아니더라도 폭언 혹은 폭력을 사용하게 됩니다. 그 당시는 분명 아이를 위한 것이었는데, 돌이켜보면 내 욕심, 나를 중심에 둔 생각 때문에 그런 일이 생겼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간혹'은 병이 아니지만 '상습'은 병입니다.

부부 사이의 상습 폭력, 연인 사이의 데이트 폭력도 이유는 하나입니다. 어느 한쪽이 사랑한다는 감정을 앞세워 일방적으로 자기를 강요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상대에 대한 사랑이 아닌, 소유하려는 욕심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살다 보면 자제력을 잃고 화를 내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그들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지극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라는 점입니다. 상대가 잘못했고 정의롭지 못했다고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지만, 면면을 들여다보면 그저 자기 마음에 들지 않은 것뿐입니다. 화를 내는 직장상사, 술자리에서 언성을 높이는 친구들, 만나기만 하면 비난 일색인 가족들…. 그들 모두 내 생각이 옳고 내 마음에 안 들어서 상대에게 상처를 줍니다.

살면서 지나치게 화를 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면 상대를 바라보지 말고 나 자신을 돌이켜봐야 합니다. 혹시 자기애와 자기연민에 빠져서 멀쩡한 사람에게 상처나 주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를 살펴보길 바랍니다. 그를 내 마음대로 움직이려는 욕심, 내 생각만이 옳다는 아집이 도사리고 있다면 타인을 상대하기에 앞서 내 마음부터 바로잡아야 합니다.

/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