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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시절 예방주사 접종은 많은 아이들에게 공포였다. 뇌염, 콜레라 예방접종 날이면 열이 있다며 한사코 접종을 피하거나, 결석도 불사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나라가 어렵던 시절 1회용 주사기는 언감생심, 주사기 바늘을 알코올 램프 불에 소독해 한 반 전체를 접종했다. 기억도 선명한 불주사다. 불에 달군 주사기 바늘이 살에 꽂히는 공포를 무심히 넘길 동심(童心)은 드물었고, 지금도 아이들에게 주사는 공포체험이다.

이물질의 신체유입에 대한 본능적 거부감 때문인지,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유도 다양하다. 가장 논쟁적인 이유는 접종거부권이다. 종교적, 도덕적, 개인적 신념에 따라 접종을 거부할 권리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종교와 양심과 신체의 자유를 앞세우니 강요할 명분이 궁해진다.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 백신 접종 거부를 인정해 온 배경이다.

터무니 없는 음모론도 있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백신을 무슬림을 불임으로 만들기 위한 서방의 무기로 믿는단다. 정통 유대교도들은 백신에 돼지 DNA가 들어있다며 접종을 거부한다. 1998년 영국에서 볼거리·풍진을 예방하는 'MMR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거짓 연구결과가 전 세계에 백신 거부감을 퍼트리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선 예방접종은 물론 병원 투약을 거부하고 대체의학을 신봉한 '안아키(약 안쓰고 아이 키우기 모임)'라는 단체가 아동학대 시비에 오르기도 했다.

이유와 음모론이 아무리 그럴듯해도 백신 접종을 거부한 대가는 참혹하고 황당하다. 당장 백신 없는 코로나19로 지구촌 전체가 신음 중이다. 2000년 홍역 종식을 선언했던 미국은 최근 몇 해 홍역이 재발해 홍역을 앓고 있다. 진원지는 백신 접종 거부운동이 활발한 지역과 난민 정착촌이다. 덕분에 백신 접종을 강제하자는 여론이 높아지는 모양이다.

최근 독감백신을 접종한 청소년과 노인이 사망해 독감백신 공포증이 번지고 있다. 앞선 백신 상온유통 사태와 맞물려 독감백신에 대한 불신이 컸던 탓에 국민 불안은 더하다. 백신과 사망과의 인과관계 규명이 시급하다. 하지만 코로나19처럼 백신 없는 공포라면 몰라도 백신 자체에 대한 과도한 공포는 금물이다. 부실한 제조와 관리가 문제지, 바이러스 창궐시대에 백신이 유일한 동아줄인 사실만큼은 확실하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