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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전 법무부 장관 덕분에 드라마 '비밀의 숲 시즌1'을 정주행했다. 2017년 tvN이 제작 방영한 드라마다. 드라마의 서부지검 검사들은 대부분 세속의 권력에 오염된 사람들이다. 황시목 검사만이 사건의 진실을 향해 직진한다. 뇌 수술 후유증으로 감정을 잃은 덕분이다. 이 별종 검사가 온갖 우여곡절 끝에 비밀의 숲에 숨어있던 재벌권력을 심판하고 살인사건의 진실을 밝혀낸다는 스토리다. 재벌가의 사위로 전 서부지검장 출신 청와대 민정수석 이창준이 사실은 황 검사를 비밀의 숲으로 인도한 내부고발자였다는 극적인 반전은 허탈했지만 극적 긴장감으로 16회 정주행이 가능했던 웰메이드 드라마였다.

조 전 장관은 지난 22일 국회 법사위의 대검 국정감사 다음 날 SNS에 캡처한 비밀의 숲 영상에 황 검사의 대사를 올렸다. "썩을 덴 도려낼 수 있죠. 그렇지만 아무리 도려내도 그 자리가 또다시 썩어가는 걸 전 8년을 매일 같이 목도해왔습니다." "대한민국 어디에도 왼손에 쥔 칼로 제 오른팔을 자를 집단은 없으니까요. 기대하던 사람들만 다치죠." 지금 검찰 조직과 검사들이 '비밀의 숲'의 서부지검과 검사들과 같다는 것이고, 결론은 SNS 제목대로 '공수처의 필요성'이다.

드라마 제목 '비밀의 숲'은 그 어떤 사정 기관의 접근도 불허하는 성역화된 모든 권력을 은유한다. 비밀의 숲에서 법 위에 군림하는 모든 권력은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산다. 이를 쳐부순 영웅들이 적지 않았다. 이탈리아 마니 풀리테 검사들과 브라질의 세르지오 모루 연방판사는 부패한 최고 권력자들을 법대에 세웠고, 미국 재무성의 비밀검찰국 언터처블들은 알 카포네를 알카트리즈 감옥에 보냈다. 하지만 이탈리아, 브라질, 미국의 권력형 범죄가 사라진 건 아니다. 사정 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법을 농락하는 권력과 사람들이 문제인 것이다.

대검 국감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은 "법리적으로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고 했다. 같은 날 박순철 서울남부지검장은 "정치가 검찰을 덮어 버렸다"며 사표를 던졌다. 수사지휘권을 박탈당한 검찰총장의 항변, 정치 현실에 비관해 검사직을 내놓은 서울남부지검장의 좌절 뒤에 범접할 수 없는 '비밀의 숲'이 어른거린다. 감정 없이 오직 법에 따라 비밀의 숲을 파헤치는 검사들이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