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흉화복이 업보의 인과인지 의문
탄생은 선택될 수 없는 자연의 섭리
생멸 육신·영혼 잠시 빌려쓰는 도구
단명·성공 등 '팔자' 단정은 어려워
이런 과정 속에서 피부 반점이 생겨나기도 하고, 기색이 바뀌기도 하고, 갖가지 주름 문양이 얼굴에 생기게 되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얼굴에 생기는 주름은 자연스러운 일이기에 그렇다 치더라도, 태어나면서 또는 10~20대에 생겨나는 것은 단순히 노화 때문이라고만 단정 짓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어떤 사람은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고, 또 어떤 사람은 가난한 부모를 만나 고생하면서 살아가고, 또 어떤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부모 얼굴도 모른 채 고아가 되는 경우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정신과 육체에 질병을 안고 태어나고,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업을 지키지 못하고 중도에 날려버리는 사람도 있고, 가난했지만 부단한 노력을 통하여 일찍이 공명의 길로 나서거나, 자수성가하여 인생의 중반부터 성공가도를 달리는 사람도 있고, 짝을 만나 끝까지 백년해로하는 사람, 중도에 부부 인연을 정리하는 사람 등등 인간 삶의 유형은 참으로 다양하다.
인생행로의 과정을 통하여 생겨나는 갖가지 길흉화복이 과연 현생을 살아가는 선(善)과 악(惡)의 업보에 따른 인과관계의 틀에 적용되어 그 기준에서만 생겨나는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볼 문제이다. 우리는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이 웃고 울고 때로는 화내고 분노하며 수많은 희로애락을 경험하고 살아가고 있는가.
올바른 양심을 갖고 선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닥치는 위난이나 고통은 어떻게 설명할 것이며, 갖가지 비리나 악행을 서슴지 않고 주변 사람들을 속이고 상처를 주면서 막대한 재물이나 명예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또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인가. 아무런 잘못도 없이 타인과의 악연으로 생명을 빼앗기는 경우도 흔한 일이며, 잘못을 저질러도 아무런 벌도 받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경우도 흔한 일이다. 이마가 저렇게 생기고 눈썹이 저렇고 귀가 저렇게 생겼으니 저런 성격이며, 성정은 저렇고 저렇게 살아갈 사람이다라고 단정 짓는 그 기준은 어디에서 출발하는 것인가.
한 인간의 명운을 통해 길흉화복의 기준으로 삼고 길흉의 판단 도구로 활용되는 사람의 얼굴 형체와 형상은 누구라도 자신이 직접 선택하고 만들어 세상에 태어날 때 갖고 나온 것이 아니다. 인연법에 따라 부모가 만들어준 유전자 결합물의 또다른 생명체인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세상에 태어날 때 자신의 명운과 얼굴의 형상을 직접 만들어 갖고 나올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게 자연발생적으로 우주자연의 섭리와 인연법에 따라 세상에 내던져지는 것이다. 그것이 생명 탄생의 시작이고 삶의 출발선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존재론적 가치는 어디에 있는 것이며, 어디까지 인간의 능력으로 바꾸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일까. 사람 본연의 가치는 영혼을 담은 정신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육신에 있는 것인가 한 두번쯤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잘살고 못살고 단명하고 장수하고 권력의 중심에 서기도 하고 평생 고단하고 불우하게 사는 것도 모두가 타고난 팔자소관이라 단정 짓기에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인간의 육체는 유한하지만 영혼을 담은 정신세계는 무한하다고 하면서 인간이 주도하는 영역에 신적 존재가치를 부여하는 내세와의 경계를 잇는 절대적 무한가치로 현생의 고단함을 극복하려 했지만, 죽음이라는 두려움의 벽은 넘어설 수 없었다. 이러한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생명이 다하면 육신과 영혼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고 끊임없는 생멸의 과정 속에서, 마음을 담은 영혼이라는 그릇은 나만의 소유물이 아니라 과거에 누군가였을 것을 현생에 태어나 잠시 빌려 쓰는 일이고, 다시 미래에 누군가의 몸을 빌려 쓰게 할 도구라는 것에 많은 사람들의 이해와 공감을 얻게 되었다.
/김나인 한국역리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