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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아는 사실이지만 일본 정치는 자민당 장기집권의 기록이다. 1955년 강경 보수인 자유당과 중도보수인 민주당이 합당해 창당한 이후 일본 정치를 지배해왔다. 두 차례에 걸쳐 야당에 5년 8개월 정권을 내준 적 있지만 장기집권 역사에선 작은 에피소드일 뿐이다. 자민당 총재가 자동적으로 총리가 되니 의회의 총리 임명동의권은 무용지물이다. '자민 막부'라는 비아냥에도 불구하고 중도에서 극우까지 아우르는 '보수 빅텐트' 자민당의 독주는 견고하다.

장기집권에 따른 폐해가 없을 수 없다. 가장 큰 폐해는 허약한 민주주의다. 의원내각제에 바탕한 민주주의 국가이지만 1당의 장기집권으로 실질적인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지난해 개봉한 일본 영화 '신문기자'는 장기집권의 폐해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우익이 주류인 탓인지 흥행은 저조했지만 한국배우 심은경이 신문기자 역을 열연해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일본 여배우들이 우익들의 '이지메'를 걱정해 배역을 외면한 덕분이다.

영화에서 일본 정부는 대학교로 위장한 생화학무기 연구소 신설을 추진한다. 주축은 총리 직속의 정보기관인 내각정보조사실이다. 하지만 내부고발자가 이를 한 지방언론에 제보하고, 내각정보조사실장은 이를 막기 위한 여론조작과 언론 회유 및 협박을 자행한다. "정권유지가 나라의 평화와 안정이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형태만 있으면 돼"라는 조사실장의 극 중 대사엔 1당 장기집권의 모든 폐해가 농축돼있다. 정권이 국가가 된 나라, 일본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기회가 될 때마다 민주당 정권 장기집권을 희망했다. 집권이 목표인 정당이 연속적인 국민지지를 꿈꾸는 건 비난할 일이 아니다. 최근 민주당이 지난달 발의한 공수처법 개정안 처리로 야당을 압박하고 있다. 개정안은 야당의 공수처장 후보 비토권을 없애는 것이다. 야당의 비토권 행사가 현실화되자, 입법과정에서 민주적 견제장치라 자부했던 비토권을 스스로 없애겠다는 얘기다. 중립적인 공수처장 후보로 야당을 설득하는 대신 절대다수 의석으로 비토권을 박탈한다면 형식적인 민주주의로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해치는 일이지 싶다. 한국 진보 빅텐트 민주당의 장기집권 구상의 목표가 형식과 실질이 일치하는 민주주의일 것으로 믿는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