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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1월, 예상치못한 감염병 습격
불확실성 일상 전무후무했던 한 해
아쉬운마음에 '100일 작은실천' 시작
해보니 우연한 발견 연속 삶이 풍요
나쁜짓만 아니면 무엇이라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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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문화평론가
내일 모레면 11월이다. 2020년이 딱 두 달 남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 해가 통째로 사라진 것 같다"는 사람들의 말처럼, 불확실성과 가보지 못한 길로 가득한 전무후무한 한 해였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전염병의 습격에 나를 비롯한 개인들의 일상도 달라졌다. 물론 환경이 바뀌었다고 해서 없던 의지가 생기는 건 아니어서 연초에 호기롭게 시작한 영어 공부는 여전히 초기 상태에 머물러 있고, 어쩌면 이번에는 열심히 할 뻔했던 운동은 코로나19 핑계와 함께 개점휴업 상태다.

한 달쯤 전, 2020년이 이렇게 가버리는 것이 아쉬워 온라인에서 발견한 '100일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당신의 습관이 되다'는 이 프로젝트는 아주 다양하다. 별자리 외우기, 하루에 한 문장 필사하기, 매일 만보 걷기, 일어나자마자 물 한 잔 마시기… 자기계발부터 운동, 마음 챙김까지 다양한 프로젝트들 중 내가 선택한 프로젝트는 간단하다. 100일 동안 매일 1개의 질문 또는 제안을 받고 응답하는 것이다. 인증시간은 매일 오전 1시부터 다음날 오전 1시까지로 실천보증금 만원을 내야 참여할 수 있는 유료 프로젝트다. 보증금은 100일 인증을 성공하면 환급된다. 물론 '100개의 질문, 100번의 생각'이란 프로젝트명처럼 매일 다른 질문에 대답하는 것쯤은 어렵지 않겠다고 쉽게 생각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내 생각은 아주 큰 오산이었다. 33일 동안 내 인증률은 63%. 자신만만하게 시작한 것치고는 꽤 자주 빠진 셈이다. 프로젝트 단체카톡방에 매일 다른 질문이 올라오고 참여자들이 돌아가며 치어리더가 된다. 사랑하는 도시, 첫 직장, 당신이 면접관이라면 하고 싶은 질문, 나의 일상, 내가 행복한 순간, 추석 보름달 인증 등 소소하지만 작은 질문에 답하다 보면 생각 여행을 떠날 수 있다.

계속하다 보니 요령도 생겼다. 그날의 질문을 읽었을 때 바로 하는 것이다. '다음에 해야지' 넘기는 순간 하루는 흘러가버린다. 전철을 기다리면서, 엘리베이터 앞에서 잠깐 틈을 내서 생각해보고 짧은 글을 완성해 인증 도장을 받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전국 각지에서 참여하는 사람들이 올리는 동네 사진 구경도, 내 단톡방에서 볼 수 없던 다양한 이모티콘의 세계는 덤이다.

100일 프로젝트 완주는 이미 실패했지만 실망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 계속해 나갈 예정이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덕에 나만의 작은 프로젝트, '낯선 틈 만들어보기'를 따로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 글을 쓰면서 배경음악으로 뭘 틀어놓을까 고민하는 것이 그렇다. 평소라면 주저없이 '선호하는 곡' 리스트를 눌렀겠지만, 이제는 좀 더 다른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 결과로 애플 뮤직에 있는지도 몰랐던 '말라알람어 음악'이라는 신기한 카테고리를 찾았다. '말라알람어'는 인도의 공식 언어 22개 중 하나로 남부지역에서 주로 사용하는 언어라는데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가보지 못한 나라, 인도 어딘가에 와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어차피 당분간 비행기 타고 외국에 가지 못할 테니 마즈리히, 바예나토, 세르타네주 등 처음 들어보는 세계 음악의 세계로 떠나보는 것이다. 하루에 하나씩, 어딘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곳에서 온 음악들을 듣다 보면 올해도 지나갈 테고, 코로나19가 사그라들면 이 음악들을 들으러 현지에 가보고 싶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두 달 남은 2020년을 이대로 보내기 전에 자신만의 작은 프로젝트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프로젝트라고 해서 꼭 매일매일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낯선 동네 가 보기, 안 먹어본 음식 먹어보기, 무작위로 음악 들어보기, 고속도로 대신 국도로 운전해보기, 버스나 전철 한 정거장 전에 내려서 걸어 가보기, 넷플릭스에서 무작위로 골라 보기… 나쁜 짓만 아니라면 그 무엇이라도 시도해볼 수 있다. 그냥 조금 낯설게 지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삶은 우연한 발견의 연속이고 그런 발견이 많아질수록, 그 사람의 삶은 조금 더 풍성해질 것이다. 10월30일, 오늘부터 일상에 낯선 틈을 만들어보는 것만으로도 코로나19와 마스크로 가득한 2020년의 기억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정지은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