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승 편의시설지역서 9개월 생활
헌재, 출입국당국 입장 반영 각하
인천국제공항 환승구역에서 9개월 동안 생활하던 앙골라인 일가족이 지난해 난민 심사를 받게 되면서 비로소 한국 땅을 밟은 일이 있다.
이후 앙골라인 가족이 자신들의 난민 심사를 받지 못하게 했던 '난민법' 자체가 위헌이라고 헌법소원을 냈는데, 헌법재판소는 그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현재 진행 중인 이 가족에 대한 난민심사 결과와는 별도로 헌재가 난민법 회부 심사 제도에 대한 입장을 정리한 것이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29일 앙골라 국적의 루렌도 은쿠카씨 가족 측 법률대리인 등이 청구한 난민법 제6조 3항과 5항에 대한 위헌소원을 각하했다.
콩고 출신 앙골라 국적자인 루렌도씨는 부인, 아동인 4남매와 함께 관광비자로 2018년 12월28일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루렌도씨 가족은 앙골라 정부의 콩고 이주민 추방 과정에서 박해받다가 한국으로 왔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국내에서 난민 신청을 할 수 있는지 심사하는 '난민 인정 회부' 심사에서 '불회부' 판정을 받은 뒤 인천공항 면세구역내 환승 편의시설지역에서 약 9개월 동안 머물렀다.
인천공항출입국·외국인청은 루렌도씨 가족이 오로지 경제적인 이유로 난민 인정을 받으려 했다고 판단해 난민 심사 회부를 거절했다. 루렌도씨 가족이 난민 심사도 회부하지 않은 결정은 위법하다고 제기한 소송에서 인천지법 1심 재판부는 "안타까운 사정은 맞지만, 불회부 결정이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해 기각했다.
하지만 2심에서 뒤집혔다. 서울고법 2심 재판부는 "원고(루렌도씨 가족)는 일단 심사에 회부돼 조사를 받은 이후 난민 인정 여부가 최종적으로 결정돼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며 루렌도씨 가족 손을 들어줬다. 출입국당국이 상고했으나,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했다.
이들 가족은 인천공항에서 숙식한 지 9개월만에 한국 땅을 밟고 현재 난민 심사 절차가 진행 중이다.
루렌도씨 가족과 시민단체는 현행 난민법이 '난민 심사에 회부하지 않을 기준'을 규정하지 않고, 대통령령(시행령)에서 정하도록 맡겨놨기 때문에 헌법의 '포괄위임 입법금지 원칙'을 어긴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난민법에서 '난민 심사에 회부하지 않을 기준'을 큰 틀에서 정립해야 하는데, 현행법은 그렇지 않다는 의미다. 루렌도씨 가족이 위헌 소지가 있는 법 적용을 받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출입국당국은 명백한 하자가 없다면 난민 심사를 받을 기회를 주는 게 난민법 취지지만, 현실적으로 회부 심사 제도가 없이 누구나 심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면 국경 수비에 타격이 크다는 입장이었다. 이번 헌재의 헌법소원 청구 각하 결정은 출입국당국의 입장을 반영했다는 분석이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