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이념 대결속 '붉은색' 금기시
인민군 부역자 학살 '금정굴 사건'
진상조사 규명 불구 손가락질 여전
'차별금지법' 도입 필요성 고민해야
이렇게 우리가 다른 것은 당연한 이치인데 사회 속의 우리는 끊임없이 이를 인정하지 않고 차별을 행합니다.
경인일보는 10월 '통큰기사'(10월 26일~28일 1·2·3면 보도=[통 큰 기사-컬러콤플렉스·(1)붉은 망령]혐오, 대한민국을 물들이다)를 통해 '차별'을 정면에서 바라보았습니다. 유난히 색에 뿌리깊게 박힌 우리 사회 차별을 수면으로 끄집어내 당사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첫번째로 등장한 색은 붉은 색입니다. 민족상잔의 고통 때문일까요. 우리 사회에서 붉은 색은 꽤 오랜 기간 금기시 됐습니다. 지금도 비정상적인 이념대결이 오가는 현장에선 '빨갱이'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오르내립니다.
붉은 색의 공포 속에 평생을 숨어 살아야 했던 이병순 할아버지는 1950년 10월 고양시 황룡산 '금정굴'에서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한국전쟁 발발 이후 인민군이 이 곳을 장악했을 때 인민군에 부역했다는 이유로 민간인 150여명이 학살된 사건입니다.
이씨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추스를 시간도 없이 "전쟁이 끝난 뒤 수십년 동안 숨어 지내다시피 하면서 살았다"고 반추했습니다.
90년대 들어 위령제를 지내고 유해발굴작업이 시작됐으며 경기도의회가 진상조사특별위원회 보고서를 내고 이 사건을 '부역자 색출 명분 아래 경찰 주도로 우익단체가 가세해 다수의 민간인을 불법 학살 암매장한 사건'이라고 규정했지만 사람들의 손가락질은 여전했습니다.
'빨갱이' 이 세글자가 주홍글씨 마냥 할아버지 인생에 박혀 도무지 지워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차별적 시선은 과거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닙니다. 어렵게 자유를 찾아 대한민국에 정착한 탈북민을 향한 곱지 않은 시선은 현재의 우리 모습입니다. 새 출발을 위해 열심히 자격증을 취득해 공무원이 됐지만, 공직사회에선 '탈북민=낙하산'이라고 소문이 돌아 한달여 동안 말을 거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차별받는 가족을 감싸안아야 하는 가족들은 어떨까요. 정예준씨의 어머니 강선화씨는 4년 전 예준씨의 커밍아웃 고백을 들었다고 합니다. 강씨는 인터뷰를 통해 "아이가 혹시 우리한테조차 버림 받을까봐 500만원 정도 모아뒀더라. 부모한테 말도 못하고 혼자서 얼마나 끙끙 앓았을까 하는 생각에 안쓰러웠다"고 마음을 전했습니다.
강씨는 "캐나다에 있을 때 만난 사람들은 자식이 커밍아웃을 해도 우리처럼 슬퍼하지 않더라. 직장을 잃을까 걱정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아이들이 커밍아웃을 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시간을 줄이려면 차별금지법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차별을 하지 않는 것, 쉽게 말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일. 다함께 어울려 사는 세상에서 당연한 일 아닐까요. 여러분은 우리의 컬러 콤플렉스를 어떻게 바라보나요. 차별금지법과 함께 여러분의 생각을 나눠보세요.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