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릿한 갯바람에 소복이 눈 맞고 서서 / 한껏 피었다가는 못내 뭉텅뭉텅 / 쓰린 제 붉은 목 떨어뜨리는 / 그때가 비로소 너의 절정이라는 것을 / 제 슬픔에 겨워 저리도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것을 / 바닥치기로 떨어뜨린 목 고이 눈감은 채 / 나를 증명하려고 오지는 않았다 / 짐짓 모르는 척 지는 해거름에 바다를 굽어본다 / 그렇게 나도 여기 오래 있지는 않으련다 / 제 몸을 쳐서 겨운 고개 다시 치켜드는 너를 두고 / 다들 한 자락 해풍에 소리를 다듬다 갈 것이다 / 그렇게 뒤늦어서야 자지러질 테지만 / 목청을 높여 피를 한 주먹 토해내도 소용없이 / 목을 더럽혀 갈기갈기 죄 찢어내고서야 / 두 눈 물컹하니 시린 뭇 별들을 헤아릴 뿐 / 천 번을 더 그렇게 네 삶을 던져둘 것이어서 / 소금바람이 할퀸 자리가 더 푸르다 / 무엇을 얻으려는 게 아니라 그게 너의 전부라는 것을 / 그리하여 삶은 이다지도 깊고 소란스러운 것을
김태형(1971∼)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모든 자리는 자리를 채우고 있을 때 그 자리의 크기와 깊이를 알지 못한다. 이같이 현존하는 것은 존재의 리얼리티이지만 존재 본질은 실체성을 통해 파악되는데, 실존이 자리하고 있을 때에는 그러한 존재 의미를 인식할 수 없다. 게다가 현존이 오래될수록 장막에 가려진 실체를 무감각적으로 바라보는, 가까운 존재로 여겨질 뿐이다. '그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꽃말을 가진 동백꽃은 12월에서 4월까지 개화하며 무려 5개월 동안 피었다가 진다. 이 꽃이 '얼마나 누군가를 사랑했기에' 천일이 넘도록 '제 슬픔에 겨워 저리도 아름답게' 개화하는 것일까. 그것은 '쓰린 제 붉은 목 떨어뜨리는 그때'가 되면 알 수 있으리. 동백이 '제 몸을 쳐서 겨운 고개 다시 치켜드는' 그리움 보이는가. 그렇게 떠나보낸 당신의 사랑도 '목청을 높여 피를 한 주먹 토해내도 소용' 없는 내가 '너의 전부라는 것을' 네가 떠난 후에 너를 다시 그 자리에서 보게 되는 것처럼.